花雲의 詩/화운의 詩 4 99

해녀(海女)

해녀(海女) 바다가 거기 있어 아무 때를 가리지 않고 고된 자맥질로 연명하는 외딴 섬 할머니 가쁜 숨을 참고 참아야만 캐낼 수 있는 한 바구니의 꿈 온몸을 부딪쳐 사는 목숨 같은 일터에서 거센 바람 휘몰아쳐 물질하지 못하는 날이면 격랑(激浪)에 묻은 남편과 아들 뼛속에 품고 바싹 마른 미역만큼 오그라드는 가슴으로 피눈물 일렁이는 바다 곁에 홀로 눕는다 2011.07.18

싸게 사는 법

싸게 사는 법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이 홈쇼핑에서 세일하는 홑이불을 샀다고 한다 한 장에 12,000원짜리가 두 장에 15,000원이라고 웬 횡잰가 하여 구입을 해놓고 싸게 샀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한다 하나는 거의 공짜로 얻은 것 같아서 며칠간은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었는가 본데 택배로 온 물건을 개봉하고 난 후 남편은 다시 물어왔다 요 위에 까는 패드인줄 알았는데 얇아서 못쓰겠다고 그러면 그렇지, 싸게 준다니까 무조건 사놓고 쓸모가 별로 없는 것이었다 "어떡할까…… 반품할까?" "그러세요. 필요 없으면 반품해야죠." 물건을 돌려보내고 끝낸 줄 알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반품하려고 하니까 반품수수료 5,000원을 제한대." "아니, 그러면 만원밖에 못 돌려 받잖아요." "그러게. 손해 보는 거보다 10,..

골목길

골목길 인연의 징검다리인양 계절마다 다른 숨소리로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지 집집대문 살피며 안부를 묻는다 기쁜 소리 슬픈 소리 놀란 소리 앓는 소리 작은 종이배처럼 위태로이 흔들거려도 살며 부대끼는 마음들 쉬지 않고 재잘거리며 흐르는 강 너무 큰 소리 내지 말고 자분자분 정다운 소리로만 흘러가려무나 담장너머 흉한 소리 소문내지 말고 때론, 침묵으로 못 본 척 피해가려무나 2011.08.13

비에 젖은 자전거

비에 젖은 자전거 폭우가 쏟아져 어둑해진 오후 가로수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자전거 흠뻑 젖은 채 물벼락을 맞고 있다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오가는 사람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이 차가운 빗줄기를 묵묵히 참고 있는데 자전거는 달리고 싶다 비가 오고 밤이 와도 하늘이 막히고 달빛이 가려도 빛을 이고 어둠을 지고 바퀴를 돌려 달려야만 살 수 있기에…… 2011.07.26

초야(初夜)

초야(初夜) 살구의 계절이다 연한 붉은 빛으로 다가온 달 같은 여자 통통하고 부드러운 품속을 열어 촉촉한 속살을 경이롭게 들여다본다 애무하듯 조심스레 감싸 안으면 온전히 지켜온 사랑에 북받쳐 여리디 여린 점막으로부터 쏟아내는 투명하고 향기로운 애액(愛液) 황홀한 주황색 순결을 마시며 그날 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에 젖어 든다 2011.07.20

구애(求愛)

구애(求愛) 어린 꽃봉오리 맺을 때부터 간드러진 눈웃음을 탐내고 있었느니 달아오르는 속마음 감추고 무더위 속에 애태우고 있자니 꼭 다문 입술 살며시 내밀며 요사한 실눈 뜨는 나리꽃 계집애 마음 한 자락 얻으려 가까이 다가서니 무엇이 토라져 고개를 외면하는지 아무리 달래 봐도 듣지 않을 심사 고혹적인 얼굴 마주 대하고 싶으면 그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으라 하는구나 201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