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5 100

어렸을 때 모습이 보고 싶다/ 1

어렸을 때 모습이 보고 싶다 가끔씩 깊은 밤에 찾아오는 아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폴짝거린다 아이와 손잡고 다니던 그곳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한 어여쁜 얼굴 먼 세월 되돌아가 기쁨에 겨웁다가 불현듯, 눈을 뜨면 잠시 잠깐의 꿈이라니... 이따금씩 만나 정겨운 시간 어렸을 때 아이가 자꾸만 보고 싶다 2014.01.07 시집 게재

눈물겨운 삶

눈물겨운 삶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처럼 처마 끝에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배고파 칭얼거리는 아가처럼 울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있으련가 아파서 울고 슬퍼서 울고 미워서 울고 기뻐도 흘리는 눈물 얼룩진 마음 다 씻어내지 못해도 안 그런 척 잊어버린 척 미소 지으며 지나가면 좋으련만 젖은 눈가에 골이 깊어질수록 속으로만 울고 있을 모습이 안쓰러워 하늘도 때로는 먹구름 사이로 큰 눈물 흘리는 것을…… 2014.01.07 시집 게재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걸어요 빠르게 걸으면 남보다 먼저 갈 수는 있겠지만 서두르느라 보는 것이 적어요 눈에 띄는 것만 보게 되고 가까이 있는 것을 지나치고 말아요 천천히 걸으면 남보다 앞서 갈 수는 없겠지만 자세히 많을 것을 볼 수 있어요 아주 작은 것까지 발견하고 생각지 못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요 천천히 걸어야만 마음속에 선명하게 담을 수 있어요 2013.12.22.

가을이 떠나는 길/<물도 자란다>

가을이 떠나는 길 어느 날 아침 산으로 가는 길이 허옇게 보이면 발이 시려도 떠나야 한다 남풍 부는 날 따라와서 들판에 싹 틔우고 꽃을 피워 오래오래 둥지 틀려 했는데 풍성한 여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로 키운 열매들 제 세상 만나 한껏 모양을 내고 어미 품 사위어가는 것은 모른 척 뒤돌아볼 것 없이 제 갈 길로 떠날 때 미리 약속한 적 없지만 스산한 바람에 상여소리 들려오면 된서리 깔려있는 산길로 떠밀리듯 보잘것없는 生, 벗은 발로 가야 한다 2013.12.17 시집 게재

씨앗/ 1

씨앗 깜깜한 골방에 삶의 기억들이 잠들어 있다 어머니의 추억과 그의 어머니의 아픔 또 그의 어머니의 눈물까지 입 다문 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통이 있었다면 한 生으로 족하지 그대로 이어서 대물림 하지는 말아야겠다 지나온 발자취 일랑 허물치 말고 다음 생을 향한 희망과 그 다음 생을 위한 염원을 담아 지금은 꼼짝없이 갇혀있더라도 숭고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그날까지 우주의 빛 고이 품고 있어야 한다 2013.11.25 시집 게재

아담의 옷

아담의 옷 환갑이 넘었어도 초콜릿 복근을 유지하는 남자 샤워만 하고 나오면 맨몸에 힘을 주고 방문 앞에 서 있다 어때! 아직 볼 만해? 단단한 가슴팍에서 아래로 훑어볼수록 로마의 신전에 서 있음직한 용사의 몸매 옷을 입지 않아도 벗은 줄을 모르고 가리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에덴동산이 있었다지? 막 물기 닦아낸 몸에서 샤방샤방 피어오르는 열기 사이로 일찍이 잃어버린 낙원이 가물거린다 2013. 10.30

일등공신

일등공신 시골 농부에겐 시원한 밀짚모자 공사장 노동자에겐 튼튼한 안전모 전쟁터 병사에겐 목숨 지키는 철모 여행길 나그네에겐 친근한 동반자 졸업하는 대학생에겐 영예로운 학사모 주인의 명예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고단해도 게으름 피울 새 없이 가려주고 막아주고 동행해주는 그[帽]는 언제나 헌신적인 일등공신 201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