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障碍) 장애(障碍) 매실 장아찌 항아리를 비우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나서 아래로 구부릴 수도 없고 위로 펼 수도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침대에 눕는 것도 신음소리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된 몸 일어나고 앉기를 수없이 하고 들어 올리고 내리기를 겁 없이 하던 날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건만 불편을 겪기 전에는 아픔 없이 사는 날이 거저였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11.11.28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2.01
바다의 얼굴 바다의 얼굴 아침에는 반짝거리고 낮에는 한껏 푸르고 저녁에는 붉디붉더라 평온해보이면 궁금하고 출렁거리면 흥겨운데 성내고 있으면 두렵기만 하더라 겉모습은 비록 거칠더라도 속은 늘 잔잔했으면…… 눈앞에 있으면 볼수록 든든하지만 어떤 때는 심히 얄궂기도 하더라 2011.11.24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30
엄마의 기도/ 1 엄마의 기도 한밤중 자다가 일어나보니 방바닥에 조용히 꿇어앉아 계신 엄마 고개를 숙인 간절한 뒷모습 날마다 드리는 은밀한 기도시간입니다 언제쯤 끝날까 기다려보지만 밤깊도록 그치지 않는 엄마의 기도 자식이 커갈수록 걱정도 많아지는지 기도시간이 점점 길어져갑니다 2011.11.14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22
나무들의 겨울잠 나무들의 겨울잠 나무들이 옷을 벗기 시작하는 늦가을 찬바람에 몸을 씻고 자야 할 시간이다 무성하던 나뭇잎 땅에 떨어뜨린 후 낙엽에 발을 묻고 잠을 청한다 우리들이 자는 날은 일 년 열두 달 삼백예순다섯 날 나무들이 자는 날은 봄 여름 가을 지나 추운 겨울날 우리들은 하루 중 밤잠을 자고 나무들은 봄이 올 때까지 겨울잠을 잔다 푹신한 함박눈 이불을 덮고 겨우내 깨지 않고 죽은 듯이 잔다 2011.11.09 나무들이 옷을 벗기 시작하는 늦가을 찬바람에 몸을 씻고 자야 할 시간이다 무성하던 나뭇잎 땅에 떨어뜨린 후 낙엽에 발을 묻고 잠을 청한다 우리들이 자는 날은 일년 열두 달 삼백예순다섯 날 나무들이 자는 날은 봄 여름 가을 지나 추운 겨울날 우리들은 하루 중 밤잠을 자고 나무들은 봄이 올 때까지 겨울잠을 ..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21
모녀의 바다/ 1 모녀의 바다 바다에 가서 딸은 일출을 보고 엄마는 일몰을 보았다 딸은 솟아나는 광채에 마음이 부시다 하고 엄마는 노을이 슬퍼 눈물이 난다 했다 아침빛이 떠올라서 금빛여울로 사라져가는 동안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눈부시기도 한 바다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지만 바라보는 이의 가슴속에 누구에게는 희망을 주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후회를 남기게도 한다 2011.11.13 월간문학 게재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8
잘 살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이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얽히고 설킨 세상사 어찌 다 풀 수 있으랴 깊이 알지 못하고 속 시원히 풀지 못해도 그런대로 내벼려두어라 생긴 대로 살아갈 것이니... 2011.11.11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7
당신을 사랑하는 건/<상사화> 당신을 사랑하는 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달리 멋있어서도 아니고 남다른 매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특별히 능력이 많아서도 아니고 값비싼 선물을 주어서도 아니고 친절하게 잘해주기 때문이어서도 아닙니다 당신이 때로 불평하고 알 수 없이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아닙니다 당신이 김씨가 됐던 이씨가 됐던 내 곤고한 생애에서 만나 함께 한 사람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11.10.12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6
마른 잎사귀 마른 잎사귀 가을이 오면 피어날 대로 피어난 잎사귀들이 푸르게 매달렸던 손 놓아버리고 땅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 중에 말라비틀어져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여윈 손 버티면 버틸수록 더 혹독한 세월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고 있어요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으면서 온종일 서럽게 흔들리고 있을 거면서 손끝에 흐려지는 기력을 애써 잡은 채 과감히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추한 모습 고집하지 말고 生을 향한 집착 버린다면 엄습하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말 것을 때가 되면 버리는 것이 도리어 아름다워요 2011.11.10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5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 / 1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 내가 만약 기억을 놓쳐 일상의 것들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해도 내 품에 안겨 새근거리던 작은 천사의 숨소리와 살 냄새 그 따스한 체온만은 간직하고 싶다 어딘지도 모르고 한 걸음씩 갔던 길을 잃어버려 영영 되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해도 어린 것들 손잡고 나들이 갈 때 깡총거리며 좋아하던 웃음소리 그 살가운 감촉과 함께 가고 싶다 2011.11.03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4
숲/<물도 자란다> 숲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은 듯 끼리끼리 비슷해서 가까이 다가가야만 확인할 수 있기에 함께 모여 있는 그들을 무리라고 부른다 이런저런 나무들이 울창한 숲 모두 한가지로 푸르게만 보이지만 바람과 태양의 발자취 따라 서서히 선명해지는 계절이 온다 멀리서도 쉽게 구분되는 빛깔 갈색, 혹은 노랑, 주황…… 꽃잎처럼 투명한 진홍색도 있는데 우르르 몰려가는 여학생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에도 각기 다른 취향으로 긴 머리, 짧은 치마, 검은 스타킹, 하얀 운동화 한껏 차별화된 차림들이 산뜻하고 어여쁘다 그렇듯 여럿이면서 각각이고 각각이어도 한데 어우러져 믿고 기대어 사는 삶이 그러하듯 서로 보듬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더 멀리 떨어질 수 없어 우거진 숲이 된다 2011.. 花雲의 詩/화운의 詩 4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