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숫물 소리/ 1 낙숫물 소리 또닥… 또닥… 처마 끝에 겨울 떠나는 소리 단단하게 응어리져 매달리던 고드름 그 손을 놓아 떠내려 보내지 못한 앙금을 풀며 봄이 오는 길목을 연다 오도 가도 못하고 달려있던 맘고생이 오죽했으랴 거만하게 외면하던 햇살을 껴안고 한 점… 한 점… 갸륵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생 살점 소리 2010.02.18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8
원더풀! 뷰티풀! 원더풀! 뷰티풀! 시상대에 올라서서 꽃다발을 흔들며 감격의 눈시울을 붉히는 우리의 챔피언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성과에 찬사를 보내며 원더풀! 뷰티풀! 숨 끊어질 듯한 레이스를 끝내고 세계인들이 승리를 인정해 주었을 때 하늘에서는 축하의 꽃비가 쏟아졌다 크고 힘 있는 나라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당당히 만국 제일의 선두를 차지한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 딸 빛나는 우승의 메달을 목에 걸고 올림픽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려준 사랑스런 얼굴들에게 원더풀! 뷰티풀! 2010.02.16 *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보며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7
군불 군불 아침까지 따듯하질 않아서 새벽 동이 틀 때쯤이면 식어지는 아궁이에 불을 피운다 통나무를 쪼개어 포개놓고 바싹 마른 가랑잎에 호호 불을 붙여 넣으면 솔솔 일어나는 꽃불 따끈해진 아랫목 솜이불 밑으로 찬바람 속을 걸어온 다리 밀어 넣으며 스러져가는 청춘의 뒷방에도 불을 지핀다 삭아버리는 육신만큼이나 쓸쓸해지는 노년의 뒤안길 냉골 아궁이에 장작더미 쌓아놓고 겨울 밤 후끈하게 군불이나 지펴볼까 2010.02.15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5
스피드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정지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가장 빠르게 달려갈 것을 마음먹는다 드디어 총성이 울리면 냉큼 튀어나가 총알처럼 날아간다 골인 지점만을 응시한 채 오로지 앞서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다 한 손을 등에 붙이고 다른 팔로는 바람을 저어라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려 앞만 보고 달려라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일체 방심할 수 없다 얼음판 위에서 승패가 결정될 운명이라면 온몸의 질주를 스케이트에 맡겨라 그러면 시속 50 킬로, 60 킬로 얼음판이 돌아가게 될 터이니…… 2010.02.14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보며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5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그리 빨리 지나가면 언제 속마음을 나눌 겨를이 있겠는지요 잠깐, 열리고 닫히는 순간 외엔 마주볼 짬이 없거늘 자질구레한 하소연은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시간이 없어 그러는지 아님 맘에 없어 그러는지 황급히 닫히고 마는 뒷모습만 애절하게 바라보는 마음 알기나 하는지요 붙잡으려 해도 뿌리치듯 사라지는 무정함은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스쳐갔다 다시 와서 멈추는 그때 마주치게 된다면 부디 그 품에 들어가길 바라렵니다 그 품에 안겨서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어디라도 함께 가길 바라렵니다 2010.02.13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4
얼음 강 얼음 강 한때는 출렁거리며 흐르던 때도 있었거늘 지금은 마음이 굳어져서 사지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고만 있을 때는 냉정하고 완고한 줄도 몰랐는데 멋모르고 다가가다 차갑고 단호함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결이 그저 평화로운 줄만 알았는데 무엇이 그리 불편하여 닫혀버린 맘 얼마를 기다려야 풀린답니까 앞산너머로 남풍 불어오면 그땐 빠끔히 문틈 열어주시렵니까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멍든 가슴 안으로 봄바람 기어드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2010.02.10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4
강물 풀리면 강물 풀리면 꽁꽁 얼었던 강물 풀리면 겨우내 잠자던 나무 안개비에 마른 몸 씻고 젖은 흙을 밟으며 누가 오시나 실눈을 뜨네 언덕배기 꽃들은 살아있겠지 얼음 밑에 숨어서 흐르던 개울물 웅크린 바위 쓰다듬으며 소식 들었니? 얼었던 강물 풀렸다는데 분홍 양산 펼쳐 들고 촉촉한 들판으로 봄 아가씨 마중 나가지 않을래? 2010.02.14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14
잠 자는 나무/<물도 자란다> 잠자는 나무 갈바람이 불면 옷을 벗을 시간이다 힘없는 육신을 떠나도 좋을 시간 내버려도 아깝지 않을 겉치레 벗어버리고 이제는 휴식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자 철부지 사랑으로 태어난 연둣빛 순정 눈앞에 넓은 바다 펼쳐놓고 떠다니지 못하는 길 위에 푸른 편지 띄워 보내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붉은 파도가 만산(滿山)을 휩쓸고 가면 미련이라도 남은 듯 매달리는 잎새 몇 닢 데리고 꿈의 바다로 떠나야겠다 봄날 이르러 숨어 흐르는 물기 올라올 때까지 조용히 깨우지 말아라 길고 긴 단잠에 들어가 순하고 어린 사랑 다시 만나고 싶으니…… 2004.02.04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04
눈꽃 눈꽃 외로움과 슬픔이 얼어붙어 엄동설한에 홀로 피는 꽃 늦가을부터였었나 하나씩 엉키던 그리움이 찬바람에 붙들려 고드름이 된 것은 한겨울이 되어도 꽃은 피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 생명을 선물로 받는 기쁨을 기다릴 수 없기에 눈보라에 실려 텅 빈 가슴 떠돌다 빈 가지에 매달려 본다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꽃 몇 날이 될 지 알 수 없어도 살아있는 동안 새하얗게 빛나는 면류관이 되기를 칼바람 속에 다져온 인내로 투명하게 피어나는 꽃 중의 꽃이다 2010.02.03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2.03
종소리 종소리 마음의 혈류를 따라 심장 가운데로 돌아오는 메아리 탯줄을 끊어 세상 밖으로 보낸 아픔이 돌아오는 소리이네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몰라도 마음으로 보는 길 멀어져갈수록 돌아보기 아득하여 잦아드는 떨림이 멈출 줄을 모르네 해질녘 맑은 하늘 끝에서 울려나는 진동이 귓속을 뚫고 들어와 애를 끊는다 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슬픔이라면 너무 애달프게 울지 말기를 심금(心琴)을 두드리는 여운 따라 생명을 허락한 영원을 찾아서 고요한 맥박으로 흘러가면 어떠리 목숨 바쳐 만들어낸 울음 잊지 못하여 목메어 부르는 소리 언제라도 가슴 열고 듣고 있으리니…… 2010.01.30 花雲의 詩/화운의 詩 2 201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