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4 99

영계백숙 발원문(發願文)

영계백숙 발원문(發願文) 아직은 부모 품을 떠날 때도 아니건만 몸보신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잡혀왔나이다 앞 못 보는 아버지 눈뜨게 하려고 공양미로 팔려 간 어린 심청이가 있다더니 펄펄 끓는 뚝배기 안 알몸으로 양손 가지런히 모은 채 공양미도 없이 제물이 되라하더이다 검푸른 파도 용솟음치는 인당수에 무참히 몸을 던진 청이는 갸륵한 효심에 왕녀로 환생했다는데 미식가의 호사스런 입맛 앞에 속속들이 골수까지 고아 바치는 공양은 무슨 가피가 있으려나 좋은 세상으로 보내주시려거든 부디 자비를 베풀어 봉황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사이다 2012.03.20

황태(黃太)

황태(黃太) 어찌 천형을 받으라 하십니까 나무기둥에 모가지 꿰어 매달아놓고 사정없이 눈보라채찍을 맞으라시면 어떤 죄목인지도 모른 채 가혹한 형벌을 견디라고만 하십니까 푸른 바다 대신 살을 에는 하늘에 머리 쳐들고 시퍼렇게 부릅뜬 눈 꽁꽁 얼도록 아무 것도 보지 말라 하시니 껍질만 남기고 속으로 담은 눈물까지 엄동설한 삭풍에 다 내어주고 다시는 기억할 수도 없이 한껏 삭아버린 뼈마디로 거듭나면 그 다음엔 어디로 데리고 가시렵니까 2012.03.13

모르스 부호[Morse Code]

모르스 부호[Morse Code] 산마을에서는 봉화를 피워 신호를 보내고 바다 위에서는 등대의 불빛으로 위치를 알리는데 조정에 나랏일을 전할 때나 각 지방에 긴박한 문서를 보낼 때 옛날엔 파발을 띄우기도 했지 연기를 피우거나 불빛을 깜박거리거나 말을 달리게 하지 않고 단지, 점을 톡톡 두드려 간략하고 재빠르게 전할 수 있는 방법 너를 향한 마음 콕콕 찍어서 신속하게 날려 보내면 들어주겠니? 2012.02.27

무엇이 될까 하니/ 1

무엇이 될까 하니 내가 나무[木]가 되어 든든한 기둥으로 부모형제 모여 사는 집 지으면 좋겠네 내가 불[火]이 되어 냉랭해진 가슴을 녹여 사람 사이 훈훈한 정 쌓이면 좋겠네 내가 흙[土]이 되어 무엇을 심던지 꽃으로 피어나 열매 맺으면 좋겠네 내가 황금[金]이 되어 헐벗고 가난한 사람 밥 사주고 배부르게 해주면 좋겠네 내가 물[水]이 되어 날마다 솟아나는 샘물로 목마른 이 갈증 풀어주면 참 좋겠네 내가 사람[人]이 되어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니 속마음 울리는 시인이 되면 더 바랄게 없겠네 2012.02.21 시집 게재

길 잃은 천사

길 잃은 천사 낯선 팔에 안겨서도 기분 좋으면 웃고 불편한 게 있으면 울어버립니다 낳아준 엄마의 품을 잃고 바람에 휩쓸려 뒹구는 나뭇잎처럼 보호시설로 위탁가정으로 떠돌아다니는 집 없는 천사 아플 때 보듬어주는 손길 그립고 넘어질 때 일으켜주는 보호자 없어도 쓸쓸히 잠드는 머리맡에 다정하게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 따스하게 안아주는 가슴 하나 있으면 하루가 천국입니다 2012.02.08

입춘(立春)

입춘(立春) 지난 봄날 그리 화사하게 피어나고도 얼마나 더 자라고 싶어 목마른 나무로 한겨울을 떨고 있었습니까 시린 동면에서 깨어나 길어진 해 그림자 재어보고는 설레는 발꿈치로 고개 드는 꽃가지 또 한 生이 기다리고 있기에 지난날보다 더 빛나는 꽃송이 피우려 깊은 심장에선 벌써부터 뜨거운 펌프질인데 아! 또다시 두근거리는 봄입니다! 201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