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4 99

무결점

무결점 명절이라 지짐이를 하려고 오래 된 녹두를 물에 담갔다 하루가 지나도 딱딱하기만 한 알갱이 하루 더 기다려 껍질을 벗기려 했지만 묵은 옷 벗기기가 수월치 않다 비벼대고 문지르며 걸러내기를 수십 차례 한나절을 골라내도 잡티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뽀얀 색깔 드러내며 조금씩 보여주는 해말간 얼굴 그래도 여기저기 눈에 띄는 얼룩이 보기 싫어서 그릇 통째로 붙잡고 색출해내어도 그 수고를 비웃는 듯 여전히 그대로이다 끝없이 추방시켜도 어디에 숨었다 튀어나오는지 아무리 다스려도 끝이 없는 마음의 수행처럼 돌아보고 후회하고 버려도 남아있는 찌꺼기 살아갈수록 오점 없는 생애란 멀기만 하다 2012.01.24

거꾸로 서는 나무

거꾸로 서는 나무 우수수 휘날리는 대로 가진 것 다 놓아버리고 손끝에 칼바람 찌르면 나무들은 거꾸로 물구나무선다 허공으로 가벼이 잔뿌리 펼쳐 햇살도 거꾸로 받고 빗물도 거꾸로 적시면서 흙속에 머리 박은 채 저 깊은 세상으로 향하는 나무 가지 끝에 얼어붙는 달과 수정구슬로 매달리는 별을 품어 긴긴 겨울 나기 하는 동안 추위를 견디며 자라나는 간절한 꽃눈 시린 발로 다시 일어서려 새벽으로 뻗는 꿈을 키운다 2011.11.21

방패연

방패연 위로만 날고 싶은 것은 땅바닥이 그의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 높은 하늘로만 다니며 푸른 바람을 마시고 사는 그는 땅으로 내려오면 금새 죽고 말아 구름 따라가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나라 가고 싶어서 허공을 박차고 솟구쳐 올라봐도 붙들려 있는 줄이 끊어지기 전에는 해 그림자너머로 갈 수 없어 팔다리 끊기고 목숨 줄 떨어져도 멈출 수 없는 날갯짓 머리를 젖히고 통쾌한 웃음 날리며 홀가분히 이세상 벗어나는 꿈을 꾸지 2012.01.22

꿈의 집/ 1

꿈의 집 나는 요즘 매일 집을 짓는다 하얀 도화지 위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고 정원을 꾸민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2층에는 침실과 서재 동쪽 큰 창으로 마을 풍경을 바라다보고 서쪽 작은 창으로 노을지는 하늘을 보고 싶다 그리고 푸른 잔디정원에서 여름 밤 바비큐 파티를 열어야지 앞뜰에 철따라 피어나는 꽃 뒤뜰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실 실개천 돌아가는 고운 바람결에 잔주름 쓰다듬으며 어릴 적 물장구치고 놀던 시냇가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그날을 꿈꾼다 2012.01.18 시집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