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4 99

웃어라! 아들아!/ 1

웃어라! 아들아! - 아들의 결혼식 어릴 때는 몸이 약해 늘 병치레에 시달리던 네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지성이 넘치는 배우자를 만나게 되니 참으로 대견하고 의젓하구나 이제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가장이 되었으니 서로 의견이 달라도 존중하고 슬퍼하고 아파할 때 위로하고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하거라 세상에서 가장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음을 감사하며 성심을 다해 가꾸어야 한다 경솔하게 화 돋우지 말고 다툼이 일더라도 온유하게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남자가 되거라 2012.01.04 시집 게재

흐르는 물/<물도 자란다>

흐르는 물 좁은 바위틈에서 솟아나 드넓은 대양으로 가기까지 물은 수도 없이 상처를 입는다 자갈길을 구르고 또 굴러 너른 강으로 나아가는 동안 소리 내지 못하고 쏟은 눈물 얼마인가 슬퍼하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고 살아가는 일은 끝까지 참고 가야 하는 길이라고 맑고 시원하게 흘러야 하는 길이라고 땅 위에 길고 깊은 울음 길을 낸다 2012.01.02 시집 게재

흙 냄새

흙냄새 화단에 수북이 쌓인 낙엽 걷어내자 갈퀴 끝에서 올라오는 진한 냄새 축축하게 젖은 흙 냄새 살아있던 것들이 죽어가는 냄새다 살아있는 동안 한 나무에 매달려 팔팔한 목숨 보존하려 무던히 견디고 지탱했던 날들 조건 없이 받았어도 이유 없이 돌려주어야 할 때 흔적 없이 썩어 흩어져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되어도 또 다른 생의 터전이 되어주고자 순순하게 돌아가는 진솔한 냄새다 2011.12.21

詩의 길

詩의 길 그랜드캐년 광활한 평원 가파르게 깎여나간 바위틈에 외롭게 뒹구는 조그만 돌멩이처럼 히말라야 장엄한 산맥 빙하수 흘러가는 깊은 계곡에 가쁘게 숨을 쉬는 낮은 이끼처럼 보이지 않는 길 따라가기 멀고도 아득해 부르튼 발 어디에 둘지 몰라 허기진 마음 울먹거려도 지금 나는 다음해 피어날 꽃눈을 기다리며 마른 잎 쓸려가는 거리 위에 벌거벗은 나무로 서 있습니다 2011.12.09

잔추몽환곡(殘秋夢幻曲)

잔추몽환곡(殘秋夢幻曲) 하늘 어두워 침침해진 날 구름 낮게 흐르고 바람 숨을 멈추고 옷을 벗은 나무들 고요히 섰는데 하얗게 내려앉은 싸늘한 서리 늦가을 들판에서 갈 길 망설입니다 구름 머문 하늘로 올라가 볼까 바람 자는 숲으로 들어가 볼까 단풍잎 떨구어낸 그늘 아래 거기라면 누군가를 만날지 몰라 풀뿌리 속에 숨어있는 꽃눈 보거든 영롱하게 빛나던 날들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고 싶어 따라가서 붙잡아 데려오고 싶습니다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