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품 고향의 품 누가 너를 한결같이 기다려주겠는가 한때 좋아했던 연인도 바람이 어디론가 불어가듯 그 마음이 변해버린다 누가 너를 한눈 팔지 않고 지켜주겠는가 아이가 어른이 되면 꿈을 찾아 떠나듯 시간이 흐르면 어디론가 가버린다 오직, 동구 밖에 뿌리를 박은 큰 바위만 변하지 않고 떠나지 않을 뿐 해가 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버이처럼 언제 돌아가도 반겨주는 고향의 오두막처럼…… 2010.04.22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5.08
가슴에 뜨는 별/ 1 가슴에 뜨는 별 어렸을 때는 해만 보고 살았다 밖이 깜깜해져도 어버이만큼 밝은 빛이 없었다 한 남자를 따라가서는 또 다른 해를 보고 살게 되었다 흐리고 비 오는 날엔 보이지도 않아 다음 날을 기다리며 참아야 했다 어둠이 내려앉는 침울한 저녁 품 안으로 들어온 작은 별이 점점 자라면서 웃음을 주고 눈물도 주었다 어두워질수록 밝아지는 두 개의 별 금보다 귀한 빛깔로 낮이나 밤이나 팍팍한 가슴에 박혀 깜빡거린다 2010.05.05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5.06
복사꽃 피면/<상사화> 복사꽃 피면 벌 나비 날아들어 흥겨운 햇살 아래 청춘 남녀 눈길에도 열꽃이 일었다 발그레해진 처녀의 뒤를 쫓아가는 사내의 잰 걸음이 날아갈 듯 펄럭인다 여기저기 붕붕거리며 집적거릴 때마다 탐스런 복숭아 단물 들 테니 꽃술이 좋아서 진저리 친다 2010.05.02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5.05
모래의 여정/ 1 모래의 여정 바닷가에 모여든 모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갈이 구르고 굴러 모래알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물길을 흘러왔을지 오늘 하루 화평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은 헬 수 없는 부서짐과 버림에 비하면 한낱 티끌에 불과한 여정 따사로운 햇볕아래 닳고 닳아 맨몸으로 뒹굴고 있는 조개껍질에게 물어보라 바윗돌이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부서지고 버리고 온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2010.04.24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5.04
항아리/ 1 항아리 제 몸을 이기지 못하여 만삭의 배를 끌어안고 양지 녘에 나앉았다 콩 자루 지고 장에 간 서방은 돌아올 생각을 아니하는데 정월에 담은 된장은 아주 곰삭아버렸네! 2010.04.28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9
마음의 손 마음의 손 하고 싶은 말을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손으로 하는 말 슬픔에 젖어 낙심하는 사람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 해주고 반가운 사람 만나자마자 반가워서 얼싸안는 두 손 치솟는 화를 억누르지 못할 때는 어떠한가 불끈 쥐는 주먹에 분노가 끓는다 석별의 아쉬움에 흔드는 손길마다 가슴 적시는 훈훈한 정 생각 따라 움직이는 손끝에 그 마음이 속속들이 보인다 2010.04.28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8
우중락화(雨中落花) 우중락화(雨中落花) 봄비에 흰나비가 떠내려가는구나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수천 마리…… 도로 가에 흘러가는 빗물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뒤돌아보지도 않는 게냐 가다가 하수도에 빠지거나 쓰레기 더미에 막히면 오도가도 못할 텐데 그리 무참하게 버려질 거면서 뭐 하러 얼굴 붉히며 애써 날았더냐 고작, 열흘 날다 지쳐버릴 꿈일지언정 순하게 차오르는 향기 때문에 온 우주가 반가이 맞아 주었거늘 처연한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내기 싫은 마음 빗물 따라 흐르랴 2010.04.26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6
첫사랑의 향기/<상사화> 첫사랑의 향기 눈앞에 화사한 꽃을 두고도 다른 향기를 느낀다 가슴 한편에 영영 시들지 않는 꽃 낯선 거리에서 언뜻 스쳐가는 익숙한 기억 때문에 꽃비가 내리는 날엔 나도 모르게 벚나무 숲으로 간다 2010.04.23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5
백령도 앞 바다에 무슨 일이 백령도 앞 바다에 무슨 일이 바다가 원망스러운 한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시나요 차갑고 어두운 바다 밑에서 부르짖는 자식의 외마디에 혼절하던 날 죽을힘을 다 해 내미는 손 잡아주지 못한 절통함에 뼈가 끊어집니다 꿈이라면 깨어나 그 눈물 멈추게 할 수 없나요 나라의 부름 받고 나선 푸른 꽃은 어느 바다로 떠내려가 보고 싶은 얼굴을 왜 다시는 볼 수 없는지 곧 돌아온다던 그 말이 실감이 나질 않아 사랑도 꿈도 모조리 떠나버린 잔인한 날 묻으려 해도 묻히지 않는 통곡을 하늘로 보냅니다 2010.04.22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2
장애인으로 만들지 마세요 장애인으로 만들지 마세요 눈과 귀는 언제라도 어두워질 수 있고 뜻하지 않게 팔다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평평한 길은 어디든지 다닐 수 있지만 올라가야 하는 계단 앞에선 장애인이 됩니다 손으로 더듬어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점자로 되어 있지 않으면 새로운 책을 볼 수 없습니다 들리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아파하는 마음 느낄 수 있습니다 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측은하면 측은한 대로 그냥 그대로 보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0.04.20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