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에게/<물도 자란다> 물[水]에게 화병이든 항아리든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순순히 담기는 물 어디든지 마음대로 자유로울 수 있음을 함부로 자랑하지 마라 원하는 대로 그 생김새를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기에 누군가 너를 향해 빈 그릇을 준비할 때 그 안에서 온전하게 충만해질 수 있음이 진정 아름다울 것이니…… 2010.03.23 시집 게재 .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23
묻어둔 사랑 묻어둔 사랑 그리워서 아프다 만날 수 없어 서럽다 뒤돌아볼수록 먼 사랑 시린 가슴 안에 솟아나서 피우지 못하고 떨어지는 처연한 꽃송이 오늘따라 바람이 소리 내어 운다 2010.03.20 .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20
다비(茶毘) 다비(茶毘) 마지막 생명의 불 꺼지고 나면 허물어지는 몸 버리고 어디로 가나 산으로 가야 하나 강으로 가야 하나 산을 넘자니 다리에 힘이 없고 강을 건너자니 타고 갈 배가 없네 이 몸에 남은 것은 얇은 베옷 하나뿐인데 떨쳐버리지 못한 집착 스쳐간 세월만큼 쌓여진 질곡(桎梏)의 허물은 어찌해야 하나 어서 가야겠네 빈손으로 돌아가야겠네 어차피 썩어질 육신 남김없이 태워 연기보다 가볍게 날아가고 싶네 이 땅에서 만들어낸 헛된 것들 다 털어버리고 저 맑은 하늘 위에 자리하고 싶네 2008.03.18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19
점 하나 찍고/<상사화> 점 하나 찍고 숱한 시간 흐르고 흘러 옛사람의 흔적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네 광대한 우주 한복판 지구성(地球城)에서 나는 티끌보다 더 희미한데 살아있는 자 아무리 긴 세월을 견뎌 봐도 그 생명이 영원하지 못하네 땅 위에 누워있는 갈잎은 얼마를 돌고 돌아 봄날의 새순으로 돋아나고 싶어 하는지 지난 해 떨어진 꽃자리에 피어난 꼭 닮은 미소가 나를 설레게 하네 그렇듯, 짧은 만남도 기쁨을 주는데 너와 내가 함께 한 인연은 얼마나 선명한 점 하나로 남을 수 있을까 2010.03.09. 시집 게재 .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09
부부처럼 살지요 부부처럼 살지요 평생의 자랑이던 아들 보내고 며느리 얻었다오 아까운 고명딸 주고 듬직한 사위 얻었다오 영감 떠난 자리 아들이 대신해주길 바라겠소 시집간 딸 돌아보기도 쉽지 않구려 아롱다롱 손주들 생겨나니 사위어가는 뼈마디에 불어 닥친 눈보라가 웬 말이요 봄이 오면 저승길 가까워져 타고 갈 흰 돛단배 기다리겠구려 떨어져가는 기력도 서러운데 자식한테 짐이 될까 남은 세월일랑 남풍 부는 포구에 보금자리 만들어 생떼 같은 자식 나눠가진 사돈끼리 알콩달콩 부부처럼 삽시다 2010.03.08.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08
미래의 어른 미래의 어른 어린이 속에 미래가 보인다 맑은 눈 속에 깃든 정직한 마음 혼탁한 사회질서 바로잡아주겠고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명랑한 웃음소리 그늘진 마음 즐겁게 해줄 수 있겠다 지혜롭고 똑똑한 아이 훌륭하게 자라서 선생님 되겠지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아이 힘든 사람 위로해 주겠고 예의 바르고 상냥한 아이 다른 사람 섬기는 사람 되겠다 때때로 욕심부리고 다투며 거짓과 속임수로 세상을 어지럽히면 어쩌나 어른의 잘못으로 어린이가 삐뚤어진다 무릇, 어른의 모습 속에 어린 시절이 배어있듯 어린이 속에서 미래의 어른이 보인다 2010.03.04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04
봄날에 봄날에 시퍼렇게 떨던 하늘이 몸을 풀어 촉촉한 대지 덮어주면 엉덩이를 흔드는 아지랑이 춤을 추며 날아온다 지난 가을 구슬피 떠나갔던 정든 이 마지못해 오시려는 지 애써 속내 감추고 기웃거리는데 힘겹게 산을 넘는 따스한 바람 그 품에 안기려 마음만 탄다 어서 묵은 옷이나 훌훌 벗어라 그래야 홀가분히 안아보기라도 하지 봄눈 녹는 계곡에서 찌든 몸 씻고 게으른 잠에 빠진 흙일랑 홀랑 뒤집어 비가 오는 날에나 바람 부는 날에나 부드러운 들판에 누워 마음껏 뒹굴어 보고 싶으니…… 2010.03.04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3.04
퀸! 연아(Queen! YUNA) 퀸! 연아(Queen YUNA) 하늘을 나는 새보다 화려한 비상을 하며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피었다 얼음나라로 날아가는 날갯짓으로 향불을 피워 마력의 문을 여는 은반 위의 여주인 기교도 그 발아래요 승패도 그 손 안에 있으니 그 앞에선 다만 머리를 숙이고 경하의 꽃가루를 뿌려라 감미로운 음악 속으로 우아한 향기 휘날리며 감당 못할 감동으로 승리의 제국에 높이 오른 퀸이여! 기쁨의 눈물이 보석이 되어 여왕의 보좌에 새 별로 찬란하다 2010.02.26 밴쿠버 동계올림픽 휘겨스케이팅 금메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2.26
십 년이 흐른 뒤/ 1 십년이 흐른 뒤 아픔이어도 괜찮다 이따금 기쁨이었다가 슬픔으로 변해도 작은 고개를 넘으면 더 큰 고개를 넘을 수 있듯 시련은 또 다른 행복으로 찾아오니까 이별이어도 괜찮다 우연한 호기심으로 마주쳤다 헤어지더라도 만남은 기억할 만한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니까 아픔을 모르고 이별이 없으면 사랑할 줄 모르고 반성하지도 않을 것 무성하던 숲이 옷을 벗고 화려한 꽃이 색을 잃어도 오늘 흘린 눈물로 하여금 십 년이 흐른 뒤 고통을 마다않고 피어나는 꽃이 되려 피가 돋는 가지를 쳐 낸다 2010.02.13 시집 게재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2.23
각막 기증 각막 기증 아무런 조건 없이 비춰주는 밝은 빛 아주 작은 동공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어둠에 갇히게 되면 깨달을 수 있으려나 만약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푸른 하늘을 볼 수 없고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눈을 포기해야 한다면 암흑만이 기다리는 어느 길목에 기적의 등불이 되어주면 어떨까 생명의 주관자(主管者)가 주신 맡아있던 육신 기꺼이 공여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반짝거리는 별로 다시 살게 될 테니까 2010.02.19 花雲의 詩/화운의 詩 3 201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