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5 100

나무와 정원사/ 1

나무와 정원사 나무야! 남편이 나긋이 아내를 부른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철따라 고운 잎 드리우라 하고 마른 날 불벼락 떨어지거나 청청한 오후 소낙비 쏟아지더라도 미소 지어야 하고 울음을 참아야 한다 어지러운 일상에 지쳐 비틀거려도 거친 세파에 쉬이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목마를 때마다 다디단 열매를 기대하며 언제라도 늘 푸른 그늘에서 편히 쉬고 싶어 하는 욕심꾸러기 정원사 그 앞에서 나무는 하루를 천년같이 어질고 지혜로운 수행자로 서있어야 한다 2012.11.05 시집 게재

늦가을에/<물도 자란다>

늦가을에 돌아가는 길은 먼 길이 아니야 언 가지를 뚫고 피어날 때는 멀기만 한 것 같았지 훈풍에 좋아라 숨 가쁘게 따라 나섰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 이별의 서러움 감추지 못하고 땅 위에 떨어져 길을 덮었네 식어가는 흙 위에 누워 밟힐 때마다 마른 이파리 바스러지는 소리 산골짜기 울려 퍼지는데 떠나는 마음 무겁긴 해도 돌아가는 길은 그리 먼 길이 아니야 2012.11.01 시집 게재

산화(散華)

산화(散華) 시골집 마당 한켠에 무더기로 쌓여 아궁이에 불살라질 날을 기다린다 베어지고 토막토막 잘려 머금고 있던 숨결마저 다 뱉어야만 갈 수 있는 길 땡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최후의 시간 속으로 떠밀려간다 살아왔던 발자취 점점 오그라들고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 연기처럼 날아가 버려도 한 生의 끝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일 수 있다면 타다가 검은 숯덩이로 남을망정 후회 없이 온몸 던져 뜨겁게 사를 일이다 2012.10.31

가면假面

가면(假面) 한번쯤은 타인이고 싶어 뒤집어쓴다 자존심은 은근슬쩍 밀쳐두고 나 아닌 남이 되어 거짓된 얼굴 뒤에 숨어서 보여주지 않는 진실을 엿보려 덮어쓴다 겉으로는 좋은척하지만 속으로는 비웃기도 하면서 앞에서는 희희낙락하지만 뒤에서는 씁쓸함을 삼키면서 한번쯤은 나를 잊고 싶어 눌러쓴다 믿지 못하는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을 감추어 둘 핑계를 만들면서… 2012.10.20

별들의 귀향/<물도 자란다>

별들의 귀향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에게는 별 하나에 한 사람씩 그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잠든 사이 등불 밝혀 들고 밤 깊도록 지켜보며 기도하고 있지요 그러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보이지 않게 지켜주던 자기별도 그만 빛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말아요 한두 개 떨어지는 날도 있고 어떤 때는 여러 개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밤도 있습니다 대개는 흔적 없이 타버리고 사라지지만 어쩌다 검은 장막을 건너 다른 은하계로 날아가는 별 그의 고향을 찾아 푸른 유리 바다에 내려앉기도 합니다 아마, 그 주인이 우주를 떠돌다 길을 잘못 들어 지구성에 와서 잠시 살았던 모양입니다 나의 별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2012-10-10 시집 게재

식육가공처리사

식육가공처리사 명절이 다가오면 그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15도C 이하에서 하루 12시간 사투에 가까운 고된 작업 100Kg이나 되는 소의 머리와 내장이 말끔히 제거되고 4등분으로 나눠진 벌건 고깃덩어리가 줄줄이 갈고리에 매달려 작업장으로 들어오면 그들의 손에 들려진 칼은 신들린 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꼿꼿이 세운 칼끝이 예리하게 뼈와 살을 발라내면 앞다리, 갈비, 등심, 안심, 사태, 양지, 아롱사태 등등 각기 14부위로 분리되어 값진 제 이름이 붙여진다 두툼한 살코기가 발라지면서 뼈는 앙상하게 드러나고 적당한 크기로 잘려져 말끔하게 포장을 마치면 비싼 값으로 손님 맞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4시간 작업 후에 먹는 꿀맛의 점심식사 식탁에선 만인에게 최고로 환영 받는 소고기지만 맛 좋은 고기반찬이 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