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심정현 사랑/ 심정현 모퉁이를 돌아서니 수수꽃다리의 향기가 가슴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더라 손톱만큼이나 작은 꽃 이파리도 차곡차곡 쌓이니 가슴이 벅차오르더라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바람이 멈추기를 간절히 빌고 싶더라 행여 꽃 이파리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떠날까 가슴 죄며 빌고 싶더..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6.28
떠나는 길에서/ 정기모 떠나는 길에서/ 정기모 발길 흐르는 대로 흘러볼 일이다 흐르다 발길이 멈춰진 곳에서 걸어온 거리를 재어보며 꿈 한번 꿔볼 일이다 노을을 따라 붉게 지는 꽃들의 사연에 서럽도록 눈물짓다가 짙은 풀잎들 당겨 덮으며 언젠가 노래하던 희망을 찾아볼 일이다 내일 다시 떠나는 길에 소..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6.16
달빛 1/ 이병초 달빛1/ 이병초 눈앞에서 막차를 놓지고 걸어간다 빈 도시락이 달그락거린다 용산다리 매화동을 지나 갈따구들이 밤이슬 젖은 바짓가래이에 채인다 고무중 새총을 들고 누가 나를 겨눈다 깜짝 놀라 숨어서 보니 어린 소나무다 놀란 가슴을 털어내며 깔깔대는 달빛 털보 영감네 대밭에도 ..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3.10
당신을 지우며/ 김종철 당신을 지우며/ 김종철 큰형님이 떠났습니다 갑작스럼 부음처럼 슬픔도 갑작스레 왔다 갔습니다. 남은 내가 한 일은 휴대폰 번호를 지우는 것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내친김에 향간과 어머니와 초또마을 절구통과 떡시루와 용접기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도! 그쯤이면 다 지워졌을 ..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3.07
홍시를 두고/ 유재영 홍시를 두고/ 유재영 1 첫서리 내린 마당 누구의 발작처럼 어디서 날아왔나 등 북은 감잎 한 장 고향집 노을이 되어 사뿐히 누워있네 2 지우고 고쳐 쓰다 확 불지른 종장(終章)같이 와와와 소리치면 금방 뚝 떨어질 듯 우주 속 소행성 하나 발그라니 물이든다 3 굽 높은 그릇 위에 향기높은 ..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3.06
사랑굿 128/ 김초혜 사랑굿 128 / 김초혜 하루내내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만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대 기슭에 이르고 말았네 모든 사람 중에 그대를 택하게 한 그대 때문에 얼굴에 눈도 입도 다 지워져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도 그대 강가에 이르면 속절없이 나를 쏟아 흐르고 마네 <해설> 누구나 사랑의 열..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3.03
공손한 손/ 고영민 공손한 손/ 고영민 추운 거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엇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해설> 먹고 산다는 건 숭고한 일이다. 늘상 먹는 밥이지만 밥은 곧 생명이고 삶이다. 어느 ..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2.27
파도/ 김영산 파도/ 김영산 나 그사람 얼굴 잊었거니 섬에서 돌 하나 파도에 묻고 돌아왔네 세월 흘러 서해 바닥가에 구를는 돌 잊혀진 얼굴 새겨져 있네 어느 순간 파도는 치고 돌 속에 물결 무뉘 남겼으리 얼굴 반질반질한 곳곳 거칠게 움푹 팬 자국 돌 속의 굽이치는 물길 파도는 파도를 넘어와 다시..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2.25
활주로/ 최영미 활주로/ 최영미 설 연휴가 끝나는 날 비행기안. 출렁인다 떠나기 전에 아, 나는 공중에 떠 있는 걸까 아직도 땅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나 활주로 위에, 내가 지나온 길들이 연기처럼 피어났다 사라지고 이루지 못한 소원들이 무지개를 그리며 구름 저 편으로 달아나려는데 갈팡질팡했던..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2.16
껌/ 김기택 껌/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직은 몸 속에 꼅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 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