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5

가을이 떠나는 길/<물도 자란다>

花雲(화운) 2013. 12. 17. 09:21

 

 

가을이 떠나는 길

 

 

어느 날 아침

산으로 가는 길이 허옇게 보이면

발이 시려도 떠나야 한다

 

남풍 부는 날 따라와서

들판에 싹 틔우고 꽃을 피워

오래오래 둥지 틀려 했는데

풍성한 여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로 키운 열매들

제 세상 만나 한껏 모양을 내고

어미 품 사위어가는 것은 모른 척

뒤돌아볼 것 없이 제 갈 길로 떠날 때

 

미리 약속한 적 없지만

스산한 바람에 상여소리 들려오면

된서리 깔려있는 산길로 떠밀리듯

보잘것없는 生, 벗은 발로 가야 한다

 

 

2013.12.17

시집 <물도 자란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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