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나는 길
어느 날 아침
산으로 가는 길이 허옇게 보이면
발이 시려도 떠나야 한다
남풍 부는 날 따라와서
들판에 싹 틔우고 꽃을 피워
오래오래 둥지 틀려 했는데
풍성한 여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로 키운 열매들
제 세상 만나 한껏 모양을 내고
어미 품 사위어가는 것은 모른 척
뒤돌아볼 것 없이 제 갈 길로 떠날 때
미리 약속한 적 없지만
스산한 바람에 상여소리 들려오면
된서리 깔려있는 산길로 떠밀리듯
보잘것없는 生, 벗은 발로 가야 한다
2013.12.17
시집 <물도 자란다>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