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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봄

아까운 봄 겨울은 길기만 했는데 바람결에 묻어오는 고운 냄새 밀치지 않아도 겨울은 가고 보채지 않아도 봄은 오고 있네 떠나는 걸음이 이다지도 아쉬울까? 기다리던 만남이 이다지도 설렐까? 돌아서는 길은 못내 서운해도 돌아오는 길은 포근해서 좋다 새롭게 다가오는 계절은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기적 너도나도 반가운 봄 어찌 이리 눈물 나게 아까울까? 2021.02.12

봄은 오는데/ <상사화>

봄은 오는데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게 없다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잊히는 약속처럼 왔다 가는 봄 그럴지라도 너도나도 살아나서 나날이 쑥쑥 자라고 힘을 다 해 꽃피웠다가 떠날 지라도 사랑을 하지 않는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꽃은 열매가 되고 때가 되면 생기를 잃어 낙엽으로 떨어져 사라지지 않는가 고운 님 보내기 서럽고 찾아오는 길손 반갑지만 추억으로 자나가는 봄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깝기만 하다 2021.02.03. * 시집 게재

겨울비

겨울비 눈송이라면 누구라도 반겨주겠지만 파고드는 한기에 지쳐갈 때쯤 남몰래 숨죽이고 내리는 겨울비 떠날 때가 되었으나 발이 안 떨어져 입 밖으로 울음소리 내지도 못하고 빈 가지에 매달려 눈물만 짓고 있네 겨우내 추워서 떨던 밤을 내내 바라보기 애처로워서 이젠 붙잡아도 머물 수가 없는데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없는 들녘 젖은 가랑잎만 땅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살얼음을 안아주고 있네 헤어지는 건 싫지만 그래도 가야만 해서 다가오는 봄에게 빈자리 부탁하고 다시 올 날 기약하며 안녕을 고하네 2021.02.03

목련 꽃봉오리

목련 꽃봉오리 갈잎 떨어져 앙상한 가지뿐인데 눈도 뜨지 못하고 나와 있는 꽃봉오리 기나긴 기다림이 애처로워라 시린 겨울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가지 위에 매달려 떨고 있는 눈꽃송이 차가운 그리움이 눈물겨워라 봄이 찾아오기엔 아직 이르단다 사랑을 이루기엔 아직 어리단다 음지에 쌓인 눈이 녹을 때까지는 창밖이 궁금해도 기다려야 하리니 앞산으로 꽃샘바람 지나더라도 성급히 밖으로 나가지는 말아라 때가 이를 때까지는 미숙한 순정 보드라운 뺨에 아픈 눈물 아니 되니 찬바람 물러가 포근한 햇살 비출 때까지 순결한 꽃잎 간직해도 늦지 않단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잎 피울 때 가장 눈부신 봄이 찾아오리니... 2021.01.23

생일 아침에/<상사화>

생일 아침에 어머니! 세월 무상해서 제가 벌써 예순아홉이라네요 아침부터 아들 며느리 축하인사 보내오고 딸은 미리부터 맛난 음식 챙겨주었기에 감사하고 먹먹한 아침을 맞이했어요 어머니!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대한 무릎까지 쌓인 눈 속에서 산고를 치르셨다지요? 미처 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 몸으로 어찌 그 눈물겨운 생산을 감당하셨는지요? 병치레 잦은 맏딸 걱정에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칠까 빙판길 마다않고 한약 다려 갖다 주시고 이 나이 되도록 약을 챙겨주시는 그 정성 자식 낳고 키우느라 내 일만 바빠서 어머니 허리 굽은 것도 모르고 그리 곱던 얼굴에 주름만 남아있는 걸 이제야 애달파 가슴 찢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전신이 부서지는 희생으로 연약한 자식 험한 세상 무사히 살아냈습니다 당신의 그칠 줄 모르는 지극..

다시 살 수 있다면

다시 살 수 있다면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얻은 것도 많지만 놓친 것도 많다 왜 그땐 몰랐을까? 가르쳐주면 다 안다는 듯 새겨듣지 않았고 거절당하면 노여워서 가슴에 화만 돋우었다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일찍이 겸손했더라면 타고난 성품 현명하게 다듬었을 것이고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알곡 같은 지식 더 쓸모 있게 배웠을 텐데 자랑할 만큼 성공한 것도 없고 부모에게 거역하여 불효하였으니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한다 해도 돌이킬 수 없다 더 이상 바랄 수도 없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이 받은 것에서 준 것 빼고 나면 초라한 빈 그릇 만약 꿈에서라도 다시 살 수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2021.01.19

熱花

熱花 열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때는 피어나는 꽃송이가 크지 않았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견딜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면 점점 뜨거워지는 꽃 이파리가 사방으로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크고 작은 열꽃이 마구 튀어 손도 데이고 얼굴도 데이고 가슴속에 화상자국을 남기게 된다 그쯤해서 멈추면 좋겠는데 들끓는 속을 헤아릴 줄 모르고 염장을 지르는 잔소리 물엿같이 걸쭉해진 열화가 진흙탕으로 끓어오르다 못해 제풀에 한숨으로 꺼지기도 하지만 참다못해 분화구가 폭발하는 날엔 냄비가 통째로 날아갈까 조바심난다 2021.01.09 대추생강고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