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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꽃

돌 꽃 얼굴을 들 수 없어 바위 속에 숨었다 끓는 불구덩이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형벌의 감옥에 갇혀야 했던 최후의 그날 존재를 감추고 싶어 묻혀있다가 갈고리에 걸려 세상 밖으로 끌려나왔다 아무도 꽃인 줄 몰랐다 차라리 맑은 물 흐르는 깊은 계곡에서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남아있는 허물 씻고자 해도 상처투성이로 아무도 모르게 박혀있을 수 없었는지 송곳 같은 눈에 들켜서 곤욕을 치른다 치욕을 벗지도 못한 채 깎이고 쪼여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얼굴 남들은 돌 속에 피어난 꽃이라고 환호하지만 숨기고 싶은 수치심은 원죄로 굳어졌다 제발 그대로 두어라! 뻔뻔한 속살 드러내고 싶지 않을 테니 속죄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어있게 제발 내벼려 두어라! 2021.03.13

바람으로 살자

바람으로 살자 봄눈 녹은 언덕으로 바람이 분다 눈보라는 마지못해 떠났지만 따라가기 추워서 가다가 되돌아온다 푸르게 물든 댓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 가진 것도 없고 갖고 갈 수도 없어 날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날아간다 서산 너머 붉은 노을 따라 바람이 분다 샛노란 청춘 부질없이 보내고 조상을 알지 못하듯 후손도 없이 가고자 하는 곳도 따로 없이 정해놓지 않아도 자유롭게 흐르면서 누구에게도 깃들지 못하더라도 아무 때나 멈추지 않는 바람으로 살자 2021.02.18

세일해도 사지 말자

세일해도 사지 말자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홈쇼핑에서 대폭 할인을 한다 비싼 것 같아 포기하고 세트로 사야 해서 망설이다가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다음으로 미룬다 겨울 물러가면 부담스런 가격도 가벼워지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찬스가 온다 놓칠까 싶어 핸드폰 만지작거리다 한겨울 혹한에도 그냥 넘어갔는데 기분 좋은 건 잠시 지금 사면 일 년은 묵혀야 해서 눈 질끈 감고 싸더라도 사지 말자 202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