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일만 이천 봉 속에 이 몸도 그려 넣어 주게
- 신광수. 『석북집(石北集)』권4
故人曾作金剛客 (고인증작금강객) 그대가 일전에 금강산을 다녀왔으니
慣識金剛眞面目 (관식금강진면목) 금강산의 진면목을 잘 알 것이요.
伊昔南山仲範宅 (이석남산중범댁) 옛날 남산의 중범 씨 댁에서
見畵金剛滿素壁 (견화금강만소벽) 흰 벽 가득히 금강산 그림을 보았지.
我今年紀近五十 (아금년기근오십) 내 나이 이제 오십이 가까운데도
不見金剛頭雪白 (불견금강두설백) 금강산을 보지 못한 채 머리가 하얗게 세었네.
塵埃墯落膏火煎 (진애타락고화전) 풍진 세상에 떨어져 기름불이 타는 듯 지내니
兒啼女哭滿眼前 (아제여곡만안전) 아들 딸이 내 눈앞에서 배고프다 춥다 우는구나.
驢江狂生騎黃鶴 (려강광생기황학) 여강의 미친 손이 황학을 타고 가서
東將入山訪神仙 (동장입산방신선) 동쪽으로 금강산에 들어가 신선을 찾는다며
招我蓬莱頂上遊 (초아봉래정상유) 봉래산 꼭대기에서 놀자고 나를 부르는데
欲往從之病苦纏 (욕왕종지병고전) 따라가려 해도 병고에 꽁꽁 매여 갈 수가 없네.
側身東望彩雲處 (측신동망채운처) 몸을 기울여 동쪽으로 채색 구름 어린 곳을 바라보니
有如劉安拖膓鼠 (유여류안타장서) 유안이 신선으로 승천하가 쥐가 제 창자를
끌어내는듯
此時風流老玄度 (차시풍류노현도) 이때의 멋진 풍류에 늙은 허현도는
走送謫仙靑門路 (주송적선청문로) 적선을 보내려 청문의 길로 달려갔지.
靑門畵廚開募春 (청문화주개모춘) 청문의 화살이 저문 봄에 열렸으니
應畵金剛持贈去 (응화금강지증거) 응당 금강산을 그려서 줄 것이다.
許夫子 (허부자 ) 허 선생이여!
我且爲君寄一語 (아차위군기일어) 내가 또 그대에게 한 마디 부치려네.
萬二千峰泉石裏 (만이천봉천석리) 금강산 만 이천 봉 산수 속에
乞寘石北申居士 (걸치석북신거사) 제발 이 석북거사도 넣어주구려.
是身天地一微物 (시신천지일미물) 이 몸도 천지 사이에 한 미물이니
不妨落墨小如虱 (불방락묵소여슬) 먹물 한 방울로 이처럼 작게 그려도 좋소.
萬瀑之洞九龍淵 (만폭지동구룡연) 만폭동, 구룡연이나
隱身臺與普德窟 (은신대여보덕굴) 은신대, 보덕굴이나
不然毗盧三萬六千丈 (불연비로삼만육천장) 그렇지 않으면 삼만 육천 길 비로봉 위에
兀然坐我以觀東海之洶湧日月之出沒 (올연좌아이관동해지흉용일월지출몰)
오뚝이 나를 앉혀서 출렁이는 동해 위에
해와 달이 떴다 졌다 하는 것을 보게 해 주오.
從君著處無不可 (종군저처무불가) 그대가 그리는 곳마다 좋지 않은 곳이 없으니
生乎山中如見我 (생호산중여견아) 산 속에서 살면서 나를 본 듯이 그려 주시
人生早晩謝拘攣 (인생조만사구련) 인생살이 조만간에 온갖 구속 떨쳐버리고
願與名山預作緣 (원여명산예작연) 이런 명산과 미리 인연 맺기 바라오.
* 玄度: 동진 허순의 자로 승려 지도림과 교유하면서 청담으로 일세를 풍미함
* 謫仙: 천상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말. 여기서는 금강산에 가는 이현환을 가리킨다
작품해설
조선 후기는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였다. 병 때문에 벗과의 금강산 동행을 포가할 수밖에 없었던 문인 신광수는 벗 허필(許佖)에게 그림 선물을 하나 요구했다. 신광수에게 금강산 유람을 함께 가자고 부른 사람은 성수 이현환(李玄煥.1713~1772)이다. 그는 서울에서 할아버지 이직에게서 배웠고, 안산에 내려와서는 성호 이익에게서 수학했으며, 강세황, 이재덕 등과 교유했던 인물이다.
신광수가 금강산 그림을 그려 달라 청한 허여정은 연객(烟客) 허필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던 인물이다. 가 보고 싶은 금강산을 직접 가지 못하니, 대신에 벗 허필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청해 자신의 처소에 걸어 두고서라도 인연을 냊고 싶다고 하였다.
신광수는 서울의 남산 자략에 위치한 벗 중범(仲範) 권사언(權師彦)의 집에서 금강산 그림을 감상하곤 하면서 금강산 여행을 늘 꿈꿔 왔다. 그래서 금강산을 구석구석 밟아 본 벗 허필에게 금강산을 그려 달라 하였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금강산 여행의 꿈을 이루고 싶은 신광수의 염원이 절실하다.
허필은 과연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어디쯤에 벗 신광수를 그려 넣어 주었을까?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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