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2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이병연

花雲(화운) 2018. 8. 13. 17:36


치옹이 숯을 사례하는 시를 보내와 장난아 차운하다- 이병연

癡翁有謝炭詩(치옹유사탄시), 戱次(희차). 『사천시선비(槎川詩選批)』



老妻西畔小兒東 (노처서반소아동)   늙은 처는 서쪽에, 어린 아인 동쪽에

大臥中間是主翁 (대와중간시주옹)   그 가운데 대자로 뻗은 사람 주인옹일세.

自得一爐紅炭後 (자득일로홍탄후)   화로에 붉은 숯이 생긴 뒤로는

頹然不復出房攏 (퇴연불부출방롱)   쓰러져 다시는 방을 나서지 않으리.


작품해설

영조 재위 초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조선 후기 시단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특히 벗들의 진솔한 모습을 시에 재치있게 담아냈다.

이병연의 벗 중 자호를 반치(半癡), 곧 '세상을 모르는 바보'하 한 이가 있었다. 몹시

가난했던 그벗이 어느 겨울날 숯을 청하자 이병연이 숯을 보냈고, 그 답례로 보내온

시에 이병연은 다시 시를 적어 보냈다.


시 속의 인물 차옹은 본명이 이태명으로,시도 잘 쓰고 노래도 잘 불렀지만 집은 몹시

가난한 인사였다. 천진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이태명과 그의 그런 모습을 장난

스럽게 묘사해 낸 이병연의 진솔한 우정이 돋보인다.

이병연은 벗의 자호를 넣아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시도 지었다.


반치옹의 시에 차운하여 감사하다- 이병연

次謝半癡翁(차사반치옹). 『사천시선비』


我是全癡君半癡 (아시전치군반치)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五更呼喚句成時 (오졍호환구성시)   시를 지어 새벽녘에 그댈 부르네.

待君不至重尋夢 (대군부지중심몽)   시다려도 오지 않아 꿈에까지 찾았건만

君到吟詩我不知 (군도음시아부지)   그대 와서 읊조릴 적 나는 알지 못했노라.


人言西澗半癡君 (인언서간반치군)   사람들은 시내 서쪽의 반쯤 어리석은 사람이라지만

癡得三分點七分 (치득삼분점칠분)   어리석기 삽분이요 영리하기 칠분이라.

閒漫招遙都不應 (한만초요도불응)   늘어져서 초대해도 도무지 응하지 않더니만

里中烹狗輒先聞 (리중팽구첩선문)   마을에서 개라도 삶으면 누구보다 먼저 듣네.


두 시 모두 '반치'라는 독특한 호를 이용하여 이태명과의 사귐을 재미나게 그렸다.

첫 시에서는 자기는 '완전 바보'고 이태명은 '반절 바보'라 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함께 시를 짓자고 사람을 보내 불렀는데 끝내 오지 않자, 이병연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 이태명의 꿈까지 꾸었다. 그런데 자는 사이에 정작 이태명이 찾아와 시를 읊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번째 시도 '반치'라는 호를 가지고 언어유희를 하였다. 벗은 자기를 '반절 바보'라고

하지만 시인 생각에는 오히려 3할만 바보고 7할은 영이하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자기

같은 사람이 시 짓자고 부르면 오지 않다가 개라도 삶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라 했다. 두 사람의 진솔하고 정겨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는 시이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