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의 늙은 선승에게 부쳐 구장을 빌리다- 서거정
寄水鐘老禪借鸠杖(기수종노선차구장). 『사가집』권2
老來足甓怒堪嗔 (노래족벽노감진) 늘그막엔 오그라든 다리가 몹시 짜증나네.
行步蹣跚脚未伸 (행보반산각미신) 길을 걷지도 펴지도 못해 비틀거리니 말일세.
欲見山中木上佐 (욕견산중목상좌) 내 산중의 목상좌를 꼭 만나려는 까닭은
芒鞋當日暫相親 (망혜당일잠상친) 짚신 신고 가서 잠시 서로 친하기 위함일세.
작품해설
지팡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나이 50세가 되었을 때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청려장(靑藜杖)을 家杖이라 하고, 60세가 되었을 때 마을에서 주는 것을 鄕杖,
70세가 되었을 때 나라에서 주는 것을 國杖, 80세가 되었을 때 임근이 내리는 것을 朝杖
이라 하여 장수한 노인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런데 여기 매우 귀한 지팡이를 빌려달라고 하는 시가 있다. 서거정이 수종사의 스님에게
구장( 鸠杖)을 빌리려고 쓴 시이다. 구장은 손잡이 꼭대기에 비둘기 모양을 시긴 지팡이로,
국가의 공신이나 원로대신으로 70세가 넘은 사람이 벼슬에서 물러날 때 임금이 주로 하사
하였다는 특별히 귀한 지팡이다.
지팡이에 비둘기 장식을 얹은 이유는 비둘기처럼 음식을 먹어도 체하지 말고 건강하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 하기도 하고, 한나라의 유방이 항우와 따우다 어느 숲으로 도망쳤을
때 비둘기가 울음을 울어 위기에 처한 유방을 구했기에 후에 유방이 부노(扶老)의 뜻으로
비둘기를 기리고자 한 것이라고도 한다.
서거정이 수종사의 스님이 구장이라도 보내오면 찾아가겠다는 뜻을 전하는 시이다. 3구에
보이는 목상좌는 나무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일컬은 말이다. 『전등록』에 의하면, 불일
선사가 협산을 만났을 때 협산이 묻기를 "어떤 사람과 동행하셨습니까?"하자, 불일선사가
지팡이를 치며들면서 이르기를 "오직 목상좌가 있어 그와 동행했을 뿐이다."하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서거정은 조선 초기 관각의 대표적 문인으로 영화로운 사환생활을 영위했는데, 그의 문집
에는 이처럼 물외한정(物外閑情)이 물씬 뭉기는 시들이 많다. 구장을 짚고서 수종사를
오르는 서거정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시이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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