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장이 날 위해 차를 만들었는데, 때마침 그의 문도 색성(賾性)
이 나에게 무얼 주었다 하여 보내 주지 않고 말았으므로 그를
원망하는 말을 하여 주도록 끝까지 요구하였다
- 정약용
藏旣爲余製茶(장기위여제다), 適其徒賾性有贈(적기도생성유증), 遂止不予(수지불여),
聊致怨詞以徼卒惠(료치원사이요졸혜). 『다산시문집』권5
與可昔饞竹 (여가석참죽) 옛날 여가는 대를 몹시 탐하더니
籜翁今饕茗 (탁옹금도명) 지금 탁옹은 차를 그리 즐긴다네.
況爾棲茶山 (황이서다산) 더구나 그대 사는 곳 다산이기에
漫山紫筍挺 (만산자순정) 그 산에 널린 것 자색 순이 아닌가?
弟子意雖厚 (제자의수후) 제자 마음은 비록 후하지만
先生禮頗冷 (선생예파랭) 선생이 왜 그리 냉대란 말인가?
百觔且不辭 (백근차불사) 백 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텐데
兩苞施宜竝 (양포시의병) 두 꾸러미 다 주면 뭐가 어때서?
如酒只一壺 (여주지일호) 술이라도 한 병 가지고서야
豈得長不醒 (기득장불성) 오래 깨지 않고 취하갔는가?
已空彦沖瓷 (이공언충자) 유언충의 차 그릇이 이미 비어 있는데
辜負彌明鼎 (고부미명정) 미명의 돌솥을 그냥 놀리란 말인가?
四隣多霍㿃 (사린다곽체) 이웃 사방에 병든 자가 많은데
有乞將何拯 (유걸장하증) 찾아오면 무엇으로 구제할 것인가?
唯應碧澗月 (유응벽간월) 믿노라, 푸른 시내 위 달이
竟吐雲中瀅 (경토운중형) 구름 헤치고 맑은 얼굴 내밀 것을.
작품해설
차 두 꾸러미를 기어이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다산의 고집 앞에 이 시를 읽으며 혜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퍼졌으리라. 그리고 이 시를 받자마자 혜장은 그 밤에 차 몇
꾸러미 챙겨 들고 초당을 찾아와, 두 사람은 다산의 다조에 차를 끓여 마시며 한밤을
보냈으리라. 다산의 시에는 혜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다음의 시이다.
혜장이 기약도 없이 왔었다- 정약용
山行雜謳 二十首(산행잡구 20수). 『다산시문집』권5
打葉三更雨 (타엽삼경우) 산경의 비가 나뭇잎 때리더니
穿林一炬來 (천림일거래)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네.
惠公眞有分 (혜공진유분) 혜공과는 진짜 연분이 있나 봐
巖戶夜深開 (암호야심개) 바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뒀다네.
한밤중 빗발이 나뭇잎을 치는데 느닷없이 숲길로 횃불 하나 보이더니 혜장이 산방으로
찾아왔다. 이심전심 다산 또한 그 밤, 문을 닫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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