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4

제자리

花雲(화운) 2011. 7. 8. 00:16

제자리

 

 

머리를 감으려고 물을 적신다

머리칼에 물을 충분히 묻히고

욕조 옆에 나란히 세워둔 플라스틱용기에서

적당량의 샴푸를 꾹 눌러 짠다

 

두피에 발라 거품을 내려고 문지르자

거품이 나는 게 아니라 미끈거리는 헛손질

어라! 이건 샴푸가 아니었나?

생긴 모양이 똑같아서

겉에 쓰여 있는 품목을 잘 읽었어야 하는데

제품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걸 몰랐다

 

샴푸를 하고 난 다음에 린스를 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놓여있으면 눈을 감고도

머리를 감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데

청소하는 중에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든 원래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있어야

이리저리 찾느라 허둥댈 일도 없고

사용하고 난 후 제자리 제대로 두기만 하면

눈 따가워 물로 헹궈내지 않아도 될 텐데

 

나 있어야 할 곳에 나 있고

너 있어야 할 곳에 너 있어서

마음잡으러 쫓아다니지 않게 되면

속 따가워 눈물 찔끔거리지 않아도 될 텐데……

 

 

201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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