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머리를 감으려고 물을 적신다
머리칼에 물을 충분히 묻히고
욕조 옆에 나란히 세워둔 플라스틱용기에서
적당량의 샴푸를 꾹 눌러 짠다
두피에 발라 거품을 내려고 문지르자
거품이 나는 게 아니라 미끈거리는 헛손질
어라! 이건 샴푸가 아니었나?
생긴 모양이 똑같아서
겉에 쓰여 있는 품목을 잘 읽었어야 하는데
제품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걸 몰랐다
샴푸를 하고 난 다음에 린스를 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놓여있으면 눈을 감고도
머리를 감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데
청소하는 중에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든 원래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있어야
이리저리 찾느라 허둥댈 일도 없고
사용하고 난 후 제자리 제대로 두기만 하면
눈 따가워 물로 헹궈내지 않아도 될 텐데
나 있어야 할 곳에 나 있고
너 있어야 할 곳에 너 있어서
마음잡으러 쫓아다니지 않게 되면
속 따가워 눈물 찔끔거리지 않아도 될 텐데……
201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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