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화운의 에세이

기다리는 시간

花雲(화운) 2010. 7. 29. 10:15

기다리는 시간

 

 

  버스터미널에 가면 일부러 한 시간쯤 여유 있는 차표를 산다. 임박한 시간 차표를 사게 되면 차가 떠날까 봐 조바심이 나서 서두르게 되기 때문이다. 서두르다 보면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나 터미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 사연들을 훑어보며 그들의 여정을 상상하며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 틈에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에 터미널에서 한가로이 기다리는 시간은 인생의 간이역에서 한소끔 '뜸들이기' 같아 여간 넉넉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이 버스 승차장으로 달려가고 어디선가 이제 막 돌아오느라 약간은 피곤한 듯한 표정을 보며 그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지는 것도 기다리는 시간이 주는 여유의 한 부분이다. 고향에라도 다녀 오는지 보퉁이 마다 고향의 선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고 휴가를 맡았는지 약간은 어색한 듯한 군복을 입고 차 시간을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있는 새내기 군인의 얼굴을 보면 대견스러우면서도 애틋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 형제들은 얼마나 벅찬 마음으로 아들이 도착하기를 고대하고 있을 런지... 올망졸망 어린 아이들을 앞에, 옆에 두르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젊은 아낙의 모습이 나의 옛날 새댁 때의 모습인 듯 하여 엷은 미소를 띠게 한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동행인이 누가 사 주었는지 음료수 한 병을 앞에 놓고 그저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  분명 할머니도 안 계신 듯 초점 흐린 눈은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모르게 앉아 있는 모습은 또한 나의 훗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인데 어느 때는 급급하여 앞 뒤 살펴볼 겨를도 없이 달려가기 바빠 점점 느긋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의 일상에서 여유를 찾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동동거리며 살아왔어도 크게 남은 것 없이 지금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왜 그리 동동거리고 살았는지 허망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조금 더 여유 있고, 너그럽게 늘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되도록 걸어가고 굳이 약속된 시간이 아니면 길 가에서 잠시 참새들이 먹이를 찾아 통통 튀어가는 모습도 지켜보고 가려 한다.

 

  그러는 사이에 생각도 넉넉하게 되고 다시금 신선한 삶의 생기를 채우며 아름다운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은 기다림에서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늘 의미를 찾으며 삶의 얼룩을 깨끗하게 지우는 일이 될 것 같다. 

 

 

20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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