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화운의 에세이

아들 이사하던 날

花雲(화운) 2010. 7. 5. 06:19

아들 이사하던 날

 

 

  며칠 전부터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던 아들이 마침내 이사를 하는 날이다.

  직장에 출근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 언제 적부터 직장 근처로 이사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아이가 어느 날, 원룸을 계약했다며 이사 나가겠다고 통고를 해 온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제 혼자 살아갈 때도 지난 것 같아 겉으로는 환영 해주었지만 속마음은 그래도 밖에 혼자 내보내기가 안쓰러워진다. 

 

  아침 내내 컴퓨터를 분해하느라 분주하더니 드디어 대충 정리가 된 것 같다고 출발을 하려 한다. 제 차에 싣고도 넘치는 분량은 내 차에 옮겨 놓고 저 먼저 출발할 테니 어디로 오라고 메모에 주소를 적어 준다. 아이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밑반찬이랑 청소 도구를 챙겨 바로 뒤따라갔다.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분당 수서고속도로를 타고 분당 오리역 방향으로 나가서 얼마 안가니 아이가 적어준 숙소가 보였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수를 찾아 벨을 누르니 아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잠잠하다. '혹시 잘 못 온 건 아니겠지?' 약간 조바심은 났지만 어쨌든 기다려 보기로 하고 전화를 하니 곧 도착할 거라고...

 

  곧 이어 도착한 아이와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사 가고 난 집이 그러듯이 집 안은 그야말로 더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전 날, 아이가 와서 냉장고 청소는 했다는데 주방 청소를 해달라고 해서 곳곳을 열어보니 그야말로 얼마를 살다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살던 곳치고 그렇게 더러운 집은 처음 본다. 사용하던 전자레인지는 물론 전기레인지 위, 선반, 서랍 등 식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드럼 세탁기 표면에 그냥 걸레질을 해서는 지워지지도 않을 묵은 때가 덕지덕지 굳어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청소를 시작해야 될지 난감했으나 싱크대 주변부터 하나씩 닦고 문지르고 때 빼기에 얼마나 시간이 결렸는지 모르겠다. 세 시간을 들여 부엌 청소를 마치고 나니 손목이 시큰거리고 독한 세제 때문에 손바닥이 벌게지고 아려 온다. 먼저 번 살던 사람들은 어린 아이 딸린 젊은 부부가 살았다는데 어쩌면 청소도 한 번 안하고 살았는지, 이렇게 더럽게 해놓고 살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아이를 맡겨놓고 맞벌이를 했다 쳐도 이렇게 어쩌면 이렇게 더럽게 해놓고 살 수 있을지...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살아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저으기 염려도 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웬만큼은 청소를 해주어야겠기에 시큰거리는 손목을 쉴 틈이 없었다. 물 좀 마시고 잠시 손을 쉰 다음, 흘린 땀도 씻을 겸 욕실 청소를 마저 해야겠기에 욕실에 들어가 보았다가 또 한 번 기절할 뻔 했다. 세면대는 물론 변기를 씻지도 않고 사용했는지 얼룩이 말이 아니고 샤워 부스도 찌든 때가 엉망이다. 세면대부터 씻어내고 하수도가 막힐 정도로 낀 오물을 제거하기까지 한 시간이나 걸려 말끔하게 씻어내고 나니 그제야 호텔 화장실만큼 깨끗이 정리가 되었다. 아이도 둘러보고 흡족한 얼굴이었지만 처음 들어올 때와는 딴판으로 깨끗해져 그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인다.

 

  대충 물건들을 정리하고 난 후, 근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식사를 마치고 아이는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차를 몰고 돌아와야 했다. 아이를 남겨두고 큰 길로 나오자 갑자기 목이 울컥해지며 마음이 메어 온다. 그 동안 병역특례로 겨우 한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직장 연수로 3개월 연수원에 들어간 것 외엔 아이가 홀로 떠나 생활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젠 부모 품을 아주 떠나 홀로 세상을 향해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니 대견하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를 홀로 날려 보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려 온다.

 

  언제까지 품에 두고 살 수도 없는 일, 독립해야 할 시기도 되었지만 기왕이면 결혼해서 독립해나가면 더 좋을 것을, 당분간은 혼자 살아야 하니 염려도 되고 무엇보다 혼자 있다는 생각에 외로워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 더 마음에 걸린다. 제 딴에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집이라도 가족이 있는 집에 들어갈 때와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갈 때와는 그 마음이 다를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다 컸으니 이제 무슨 일이든 스스로 헤쳐 가며 살아가겠지 하는 기대도 있지만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저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부지런히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어려울 때마다 겸손히 기도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신의 은총을 빌어본다.

 

 

201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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