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주는 것
나주에 있는 영화 세트장에 갔을 때 일이다.
영화 세트장을 여러 군데 가 보았지만 나주에 있는 세트장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훨씬 규모가 크고 짜임새 있게 되어있는 것 같아 볼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세트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을 왔지만 그런 규모에 비해서는 왠지 관람객이 적은 것 같아 보여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그만한 세트장을 구비해놓고 영화를 다 찍고 난 이후 관람을 위한 홍보가 덜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때마침 양귀비 축제를 한다고 해서 겸사겸사 보려고 갔었는데 영산강 주변에 있는 양귀비꽃밭은 시기가 맞지 않아서 꽃망울이 맺힐 생각도 안하고 있어 영상테마파크를 돌아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양귀비 꽃 축제와 맞물려서 영상테마피크는 좋은 구경거리가 될 만 했다. 구석구석 셋트장을 돌아보려면 두어 시간은 걸리는 것 같았다. 여러 건축물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에 방영된 인기 사극 드라마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어보기도 하고 그 당시 시대에 일어났음직한 사실을 상상해보기도 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가 않다.
실내 세트장도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배우들이 열연한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 드라마 속에 인물들을 회상하며 핸드프린팅을 사진에 담았다. 웬만한 건축물을 돌아보고 철기 방을 돌아보고 나올 무렵, 맨 끝자락에 마구간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작은 당나귀가 두 마리 매여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했는지 축사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힘들게 주변에 솟아나오는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 주변의 풀을 거의 다 남김없이 뜯어먹어 웬만큼 고개를 뻗지 않으면 혀끝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풀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갑자기 가엾은 생각이 들어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풀들을 한 줌 뜯어 주었더니 아주 맛있게 받아먹는다. 먹이를 당나귀 입에 대주기가 약간 무섭기는 했지만 사나운 동물이 아니리라 여기기에 잘 받아 멱을 수 있도록 입에 갖다 주기를 몇 번, 그 때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한두 번만 하고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먹이를 찾는 동물에게 아주 단순한 동정심으로 신선한 먹이를 주게 되었지만 냄새를 맡아보지도 않고 그저 주는 대로 덥석덥석 맛있게 받아먹는 당나귀에게서 이상한 감동이 밀려 왔다. 주는 자에게 특별히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는데 주게 된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쁘고 감사한 것은 어인 일인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신도 피조물에게 이렇게 아무 대가 없이 줄 수 있는 것을 기뻐하는 건 아닐까. 받는 사람이 아무 불평 없이 받아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보는 것이 신의 기쁨이 되는 건 아닐까? 분명 신은 모든 생명들에게 이 땅에서 충만하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필요한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을 것이다. 그러한 믿음으로 주는 자의 마음은 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다.
201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