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7

겨울에 쓰는 수상록

花雲(화운) 2019. 11. 26. 10:27

겨울에 쓰는 수상록

 

 

봄은 환희였습니다

언 땅을 헤치고 솟아나는 새싹들이

따스한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골짜기를 달리는 개여울은

갈 길이 멀어도 쉴 수가 없습니다

햇살을 향하여 손을 뻗는 꽃대에게 빛나는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여름은 전쟁이었습니다

질긴 목숨을 키우기 위해

천둥 같은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세찬 비바람과 타는 불볕 아래서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끈질기게 맞서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축복이었습니다

땀으로 길러낸 열매와 씨앗들을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어미에게 달려있던 탯줄을 끊어내며

부족함 없이 나누는 넉넉함은

감사와 기쁨의 축제가 됩니다

 

겨울은 돌아갈 때입니다

동요하는 마음 없이 천천히

모두 벗어버리고 깊은 잠에 들어야 할 시간

점점 온기가 떠나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습니다

꺼지지 않는 생명의 근원만을 품은 채

다음을 향해 스스로를 버리고 있습니다

 

 

2019.11.26

시집<물도 자란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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