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독경 소리 끝나자마자 - 정지상
琳宮梵語罷 (림궁범어파) 절에서 독경 소리 끝나자마자
天色淨琉璃 (천색정유리) 하늘빛이 유리처럼 깨끗해졌다.
鄭知常 (?~1135)
- 고려 인종 때의 시인. 호는 南湖.정언 사간 들의 벼슬을 지냈다.
- 묘청이 서경 천도 운동을 일으키자 여기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김부식에게 죽음을
당했다.
- 고려 시대를 통틀어 손꼽는 시인으로 이름이 높은데, 정작 현재 남은 작품은 20수
정도뿐이다.
작품해설
- 절에 갔는데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읽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맑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스러워지며 기분이 아주 맑아졌다.
- 독경이 끝나고 나서 하늘을 바라보니 좀 전까지 잔뜩 흐렸던 하늘이 마치 유리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시인은 스님의 독경 소리가 마음속의 구름만 걷어간 것이 아니라
저 하늘의 구름까지 씻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 깁부식은 평소에 정지상에 대해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지상이 지은
이 시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이 구절을 자기에게 달라고 졸랐으나 정지상은 끝까지
김부식에게 그 시를 주지 않았다.
- 이 일로 김부식은 정지상에 대해 원한을 품었고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두 사람은 정치적 입장도 완전히 달라 뒤에 정지상이 묘청과 함께 서경,
평양으로 서울을 옮기자는 주장을 내세웠을 때도 김부식은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했다.
- 나중에 묘청이 반란을 일으겼을 때 김부식이 토벌의 책임을 맡았고 정지상은
김부식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다. 정지상이 죽은 뒤 김부식이 〈봄날〉이라는
시를 지었다.
詠春(영춘)
柳色天絲綠 (류색천사록) 버들 빛은 천개의 실 푸르고
桃花萬點紅 (도화만점홍) 복사꽃은 만 점의 꽃이 붉다.
- 새로 지는 시가 마음에 들어 김부식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지상의 죽은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철썩 때리며 야단을 쳤다.
"천 개의 실과 만 점 꽃이라니 네가 그것을 직접 세어 보았느냐? 이렇게 고쳐라!"
귀신은 한 글자씩 고쳐 읊었다.
柳色絲絲綠 (류색사사록) 버들 빛은 실마다 푸르고
桃花點點紅 (도화점점홍)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
-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한 글자씩 고쳤을 뿐인데 시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자.
김부식은 죽은 정지상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고 후세 사람들이 정지상의 재주를 아껴서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지은 시를 보고 한 글자만 고쳐서 그 시를
훨씬 더 좋게 만드는 이야기가 옛날 책 속에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한 글자의 스승'
이라고 불렀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정민.
(주)보림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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