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詩의 집에서/ 김혜숙
아르노 강을 가로 지르는 몬테베키오
베아트리체를 기다리며 수없이 서성이던 곳
그 다리 초입에 거푸집을 지었다
허공의 집
바람의 집
나는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을 잃었다
길은 길 따라 끝이 없고
따라오는 길을 자꾸만 지우는 안개
저 다리를 건너면 네게 닿을 수 있을까
강물이 강을 버려 바다에 닿듯
나는 무엇을 버려 너를 만날까
바람이 몸을 풀어 강물을 깨우고
수초가 흔들리다 달의 그림자로 눕는 곳
연잎의 물방울이 흘러 물알을 깨고
물의 신들이 춤을 추는 곳
이곳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신곡 한 편 얻을 수 있다면
휑한 거푸집에 남아 스러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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