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韓紙)
거친 비바람 맞고 자란 닥나무가
기품 있는 화선지로 다시 태어난다면
더 바랄 영화가 없지
태어난 지 일 년도 살만큼 살았다고
팔다리 잘리고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
숨 넘어갈듯한 수행을 거쳐야 하네
달궈진 몸 식기도 전에
품어온 속내 드러내도록 발가벗겨져
이겨지고 다져져도 거듭나는 길은 멀기만 한데
잿물에 잠겨 고행을 마치면
그제야 깃털처럼 가벼워지려나
끈질긴 염원 풀어내고 또 풀어내도
한껏 날아오르기엔 여전히 무겁기만 하네
오랜 기다림마저
뜨거운 다림질로 말끔히 펴서
반듯하고 매끄러운 마음의 길을 내면
마침내 명인의 손길 앞에 다다를 수 있으려나
201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