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화운의 에세이

동그라미를 채우자

花雲(화운) 2010. 2. 5. 16:14

동그라미를 채우자

 

 

  한밤중 곤하게 자다가도 꼭 중간에 잠을 깨게 된다. 잠이 든 후, 계속 7, 8시간을 자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3시간가량 자다 보면 화장실엘 가든지, 목이 마르든지 한 두 번은 일어나게 된다. 정말 몸이 피곤하면 얼마 안 있어 다시 잠들게 되지만 다시 자려고 누우면 말똥말똥 공상만 하다가 그만 잠을 놓쳐버리게 된다. 십 여분 정도 잠을 청해 봐도 곧바로 잠이 들지 않으면 아예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자리에 누워서 뭉개봐야 머리만 복잡해지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편다.

  

  성경 통독은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라 읽는 분량에 따라서 읽을 때마다 비어있는 동그라미를 채우는 목록 표가 있다. 그 목록 표에는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이 정해져 있고 다 읽으면 읽은 만큼 동그라미를 채운다. 성경(신구약) 66권을 일 년에 다 읽으려면 그것도 적잖은 분량이라서 매일 20분 이상은 빠짐없이 투자를 해야 완수할 수 있다. 보통 성경통독을 하려면 매년 초에 창세기부터 시작하다 구약 중간까지 진행되면 그 진도가 잘 나아가지 않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신약으로 건너 띄어보기도 하지만 잘해야 신약을 다 뗄까 말까 하다가 연말을 맞이하기 일쑤다.

 

  몇 해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은 성경통독을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한밤중에 깼다가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 묵상을 하고 성경을 펴 든다. 보통 지정 해놓은 분량보다 하루에 한 두 장정도 더 많이 읽게 되는데 하루에 다섯 개장을 30여분에 걸쳐 읽는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대목에 연필로 줄을 쳤다가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고 읽기가 끝나면 컴퓨터 내 플래닛의 '콰이어트 타임'메뉴에 그 말씀과 묵상한 내용, 나에게 적용되는 감동, 기도문을 적어두는 버릇이 생겼다. 큐티노트가 하나씩 채워갈 때엔 말씀의 감동으로 마음이 평화롭고 기쁘지만 성경을 읽어 나갈 때, 주제별 구별하는 단락마다 조그만 동그라미를 빨간 볼펜으로 채워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가 않다.

 

  동그라미를 채우려고 하면 읽어 가다가 중단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빨간 동그라미를 채우는 것이 마치 곡식 창고에 쌓이는 알곡 같아서 색칠을 할 때마다 마음은 마냥 부자가 된 듯하다. 중요한 구절에 줄을 그어가면서 읽는 것도 의미 있지만 빨간 동그라미를 채우는 일은 중간 중간 읽기를 멈추어야 하는데도 모르고 그냥 건너뛰게 되지를 않는다. 그 빨간 동그라미가 주는 의미와 수고가 내게 주는 크나큰 선물인 것만 같아서 그 일을 중단 할 수 없게 되고 성경 구석구석 빨간 불이 켜질 때마다 마음의 불빛도 따듯하게 커지는 것만 같아 뿌듯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성령의 등불이 환하게 비쳐서 예수님과의 동행이 되는 발자국이 될 것을 믿으며 내일도 모레도 빨간 동그라미를 채우려 한다. 

 

 

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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