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7

우렁이의 자리/<물도 자란다>

花雲(화운) 2019. 7. 25. 11:12

우렁이의 자리

 

 

누구에게나 자기 자리가 있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평생을 기어 봐도 벗어날 수 없는

고인 물속에 우렁이가 있습니다

 

햇볕을 가리는 물풀 아래

진흙바닥에 묻혀 살지만

자손만은 물 아닌 세상에 낳고자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온몸이 마르는 순간이

생의 마지막이 될 지라도

용왕의 후손이었을 지도 모를 기억을 더듬어

마른 곳을 찾아 산란을 마치면

 

어둡고 축축한 자리에서

죽도록 엎드려 살았어도

밝은 빛 속에 태어난 생명은 

밑바닥 생애에서 벗어나는 꿈을 꿉니다

 

 

2019.07.16

시집 <물도 자란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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