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붉은 꽃 봄꽃처럼 시들까봐- 이옥봉

花雲(화운) 2018. 8. 7. 20:44


규방의 한- 이옥봉

閨怨(규원). 『국조시산』



有約來何晩 (유약래하만)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庭梅欲謝時 (정매욕사시)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虛畵鏡中眉 (허화경중미)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 봅니다.


매화 필 때 님과 만날 것을 약속했으나 매화가 지려 해도 님은 오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나뭇가지 위에서 까치가 울자 행여 님이 오시지나 않을까 하는 설렘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해 본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님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님을 위해 단장하는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매력은

마지막 구의 '부질없이(虛)'에 응축되어 있다.


이 시를 쓴 여성은 이옥봉(李玉峰)이다. 옥천군수 이봉의 서녀로 태어나 조원(趙援.

1544~1595)의 소실이 되었는데, 임진왜란 직전 35세를 전후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원의 현손인 조정만이 편찬한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뒷부분에

『옥봉집』이 수록되어 있어 그녀의 시를 아직도 읽어볼 수 있다.


허균은 옥봉의 시를 "맑고 굳세며 여성의 화장기가 없어 가작이 많다"고 평가했으며,

신흠과 홍만종 역시 옥봉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라 높이 평가

하였다. 또한 그녀의 시는 『명시종(明詩宗)』, 『열조시집(列朝詩集』등에 실려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그런데 도리어 시재(詩才)때문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



흥에취해 님에게 보내다- 이옥봉

漫興贈郞(만흥증랑). 『옥봉집』


柳外江頭五馬嘶 (유외강두오마시)   버들 숲 밖 강 언덕에 다섯 필 말이 우는데

半醒愁醉下樓時 (반상수취하루시)   술 깨자 근심에 취하여 누각을 내려왔었지.

春紅欲瘦臨粧鏡 (춘흥욕수림장경)   붉은 봄꽃처럼 시들까봐 경대를 마주하고서

試畵梅窓卻月眉 (시화매창각월미)   매화 핀 창가에서 반달 같은 눈썹을 그려보네.


1구와 2구에서는 남편이 떠날 때 버드나무 심어진 강둑길로 떠나는 님을 누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근심에 취해 술을 마시고 술이 깨면 근심을 잊으려고 다시

술을 먹다가 해가 기울어 누대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3구와 4구에서는 낭군과 헤어진 뒤 그래도 부질없는 화장을 새로 한다고 하여

낭군을 기다리는 심정을 넌지시 전하였다.



옥봉이 남편에게 준 「운강에게 주다. 贈雲江(증운강)」라는 시가 있다.

이 작품은 일명 「꿈속의 넋. 夢魂」이라고도 전하고, 또「자술(自述)」로도 알려져 있다.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는 어떠신가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창가에 달빛 이르면 제 한은 깊어만 가요.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만약 꿈속의 넋이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을.


운강은 남편 조원희 호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는 님을 은근하게 원망하고 있다.

님을 향한 그리움의 정도를 구상화낸 결구가 매우 돋보이는 구절이라 하겠다.


옥봉은 어려서부터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고 글공부와 시 짓기를 즐겼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어도 혼처를 쉽게 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조원의 명성을 듣고 스스로

첩이 되고자 하였다. 그런 옥봉이 소박을 맞았는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그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