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고 새 울어라 내가 무얼 관계하랴 - 추사 김정희
<奇錦溪禪>
放處西川十樣錦 (방처서천십양금) 펼쳐 놓으면 열 가지 모양 서촉비단이요.
收時明月印前溪 (수시명월인전계) 거둬들일 땐 앞 시내에 밝은 달 더 있네.
收放兩非還兩是 (수방양비환양시) 펼치고 거둠이 둘 다 그르거나 옳거나
一任花開與鳥啼 (일임화개여조제) 꽃 피고 새 울어라 내가 무얼 관계하랴.
秋史 金正喜 (1786~1856)
- 조선
- 19세기 전반기를 살았던 서예가. 금석학(金石學), 고증학에 밝은 실학자로 한국 사상사
에서 보면 불교에 심취한 유교지식인으로 더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다.
- 백파(白坡). 초의(草衣) 등 당대 여러 선사들과 폭넓고 깊은 교분을 맺었으며, 당시에
벌어졌던 禪學논쟁에도 끼어들어 선리에도 일가견을 지녔다. 그만큼 김정의는 조선
시대 유교와 불교의 교류와 상호이해의 현장에서 남긴 업적이 실학자로서의 업적보다
훨씬 더 중요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해설
- 이 시는 '금계(錦溪)라는 법호를 지닌 어느 선사에게 그 법호를 풀이해 주면서 '선'의
세계를 읊은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 시인은 비단처럼 펼텨진 냇물 곧 '금계'를 바라보며 그아름다움을 이중적으로 발견
하는 시야를 열어주고 있다. 바로 '선'의 세계는 이렇게 한 가지 세계를 보면서 또
하나의 눈을 떠서 다른 세계를 볼 줄 아는 눈을 열어가는 푼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하나의 사물로서 '금계'라는 냇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야를 보여준다. 먼저 이 냇물에서 비단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본다. 냇물이 비단
을 펼텨놓은 것으로 보인다.
- 그 비단 가운데서도 극상품인 西蜀에서 나는 채색비단 곧 '촉금'의 아름다운 색채
와 무늬가 살아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비치는 각도가 변함에
따라 서촉 비단이 자랑하는 그 유명한 열 가지 채색무늬가 다 펼텨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냇물은 이제 흐를 필요도 없다. 이미 냇물은 그대로 '비단'이 되어 밝은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며 펼쳐져 있어 냇물을 보면서 냇물을 잊고 비단의 아름
다움에 취해 있다.
- 이 비단에서 거울의 밝음을 본다. 낮에 햇살 아래서 비단으로 영롱하게 빛났지만,
해가 저물고 밤이 오면 비단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펼텨 놓았던 비단은
어느 틈에 말끔히 거뒤들이고 어둠이 몰려오자 냇물도 잘 보이지 않는다.
- 그런데 동산에서 달이 떠올라 중천에 이르니 이 냇물은 거울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
이제 냇물은 또 다시 흐를 필요가 없어졌다. 냇물을 보면서 또 냇물을 잊어버리고,
그저 달을 비춰주는 거울로서 '天鏡'의 환상적 아름다움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셋째 구절에서 냇물을 다시 객관화기켜보는 또 하나의 시야를 열어 보여준다.
펼쳐서 '비단'이 되고 거두어서 '거울'이 되니 이 냇물이 '비단'이냐 '거울'이냐
따질 일도 아니요, 옳고 그르니를 시비할 것도 아니요,'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
을 내세워 절충하고 조정해보려고 할 것도 아니다.
- 여기서 '선'은 바로 '시비'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 비워버려 '무념무상'으로 '시비
'의 허망한 물결을 잠재움으로써 얻는 평화와 자유로움을 얻는 지헤가 될 것으로
본다.
- 그리하여 마지막 구절에서 꽃이 피어 아름답다고 가슴 설레는 일, 새가 울어 안타
깝다고 눈물짓는 일 다 잠시 잊고 '무념무상'에 들어가보자고 손을 붙잡아 이끌어
주고 있는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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