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논에선 진흙 소 달빛을 갈고 - 소요 태능
<宗門曲>
水上泥牛耕月色 (수상니우경월색) 무논에선 진흙 소 달빛을 갈고
雲中木馬掣風光 (운중목마체풍광) 구름 속의 나무 말은 풍광을 끄네.
威音古調虛空骨 (위음고조허공골) 태초 부처님 노래 허공 뼈다귀런가.
孤鶴一聲天外長 (고학일성천외장) 외로운 학 울음 하늘 밖에 퍼지네.
逍遙 太能 (1562~1649)
- 조선
- 밤중에 달빛이 가득 비치고 있는 무논을 갈고 있는 '진흙으로 빚은 소'와 구름 속에서
온갖 형상을 이룬 경치를 끌고가는 '나무로 깎아 만든 말'은 도저히 실상일 수 없는
허상임에 분명하다. 우선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데도 그 정경의 그림은 어떤 실상
못지않게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그려져 눈 앞에 떠오른다.
- 그림이 아름다워 꿈속에서 보는 것 같아 꿈인지 현실인지 분별이 잘 되지 않는다.
마치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된 것인지 분별을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그림의 허상 속에서 어떤 실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大乘起信論』애서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대상이 생겨나고,
마음이 소멸하면 온갖 대상이 소멸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실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현실세계도 사실은 마음이 조작해내는 허망한 그림자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이 허망한 그림자를 통해서 마음의 진실한 존재를 알 수 있다. 문제는 허망한
그림자를 실재라 생각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짚고 넘어서 달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 손가락이
없으면 달을 모르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면 달이 보이지 않을 것이니, 손가락에서는
가리키는 기능만 취하고 떠나야 한다. '진흙으로 빚은 소'나 '나무로 깎아 만든 말'은
허상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 주기 때문에 그 허상 너머에 있는 실상을 기리키는 손가락
의 역할을 하는 것간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니 허상을 깨고 허상을 떠나
야 실상이 보인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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