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을 정좌하여 마음 성을 지켰더니 - 서산 휴정
十年端坐擁心城 (십년단좌옹심성) 십년을 정좌하여 마음 성을 지켰더니
慣得深林鳥不驚 (관득심림조불경) 깊은 숲에 길들여져 새들도 놀라지 않네.
昨夜松潭風雨惡 (작야송담풍우악) 간 밤 송담에 비바람 몰아쳤는데
漁生一角鶴三聲 (어생일각학삼성) 물고기 한구석에 모이고 학은 세 번 울고 가네.
西産 休靜 (1520~1604)
-조선
작품해설
- 첫 구절에서 휴정은 자신이 세운 한 가지 뜻과 그 뜻에 따라 살아온 외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직 깨침을 얻기 위해 십년 동안 참선하며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한다. 깨달음의
길은 결코 쉽게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인고를 견뎌내는 수행의 과정을 요구한다.
적어도 강산이 한 번 바뀌어진단,ㄴ 10년의 세월동안은 마음을 지켜주어 마음이 어떤
충격에도 흔들림없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키워주어야 한다. '십년 공부'가 공연한 말이
아닌 것이다.
- 둘째 구절에서는 마음을 지켜서 마침내 이루어낸 성과를 보여준다. 이제 자신도 깊은
숲 속의 나무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인가? 숲 속의 식구로 받아들여져 숲의 일부가 되었
는지 새들도 놀라지 않는다 한다.
- 셋째 귀절에서 고요한 마음속에 한 차례 격렬한 파란이 일어난다, 이 귀절에 대해 지안
스님 "한 소식 체험한 경계를 읊은 것이다"라고 짚어주었다. 어떤 유혹도 이겨내고 고요
하게 지켰던 자신의 마음, 그 고요함을 지키는 것만으로 최종적인 완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뿌리째 흔들고 다 뒤집어 놓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 어떤 생명도 보호만으로 성숙될 수 없다. 보호하여 잘 지키는 과정과 자신의 굳어진
껍질을 깨뜨리고 다시 커져야 하는 것이다. 십년을 소중히 지키며 다듬고 키워온 그
마음을 하루 밤 사이에 다 풀어 젖히고 뿌리째 한번 뽑아보는 사건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 마음은 한 단계가 커가는 것이다.
- 넷째 구절은 셋째 구절 다음에 오는 새로운 평정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간밤의
격동이 지나자 이 송담에는 여전히 못 속에서는 물고기가 때를 지어 한 구석으로 몰려
들고 못 가의 솔숲에서는 학이 날며 길게 울고 있다. 그러나 간밤의 격동은 지나가지
잊혀지는 사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 한 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돈오(頓悟)'를 하고나서도 지속적으로 수행해가는 '점수
(漸修)'를 해야 한다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점수'의 뒤에 또 다시 '돈오'가 오고 꼬리
를 물면서 나선형으로 최상승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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