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은 베개 삼고 - 진묵 일옥

花雲(화운) 2018. 3. 6. 13:37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은 베개 삼고 - 진묵 일옥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은 이불, 땅은 자리, 산은 베개 삼고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이라.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해 거리낌없이 일어나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다만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려서 싫구나.


震默 一玉 (1562~1633)

- 조선


상상'은 조금 넓혀 계속되고 있다. 장 한쪽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와 베개에서 내가 들어

   앉은 방안을 둘러본다. 곧 저하늘에 떠 있는 달이야 내 방에 촛불을 밝혀놓은 것일

   뿐이요, 저 하늘에 뜬 구름은 내 방에 둘러텨 놓은 병풍일 뿐이다. - 그렇다면

-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고 무슨 일에도 마음 조릴 것이 없는 호방한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이다.

- 진묵은 31세 때 임진왜란을 겪었으니, 전란의 처절한 고통도 맛보았을 것이고, 작고

   무기력한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핍박받는 계층인 승려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런

   호방한 기상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질 않는다.

- 첫 머리에서부터 하늘을 이불로 삼아 덮고, 땅을 자리로 삼아 깔고, 산을 베개로 삼아

   베고 잔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있다.

- '거인의 상상'이란 바로 이러한 분별과 시비로 날을 세우고 있는인간 세상을 한꺼번에

   다 털어내는 새로운 시야를 여는 것이요, 큰 눈을 뜨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거인의

   상상'은 조금 넓혀 계속되고 있다. 장 한쪽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와 베개에서 내가 들어

   앉은 방안을 둘러본다. 곧 저하늘에 떠 있는 달이야 내 방에 촛불을 밝혀놓은 것일 뿐

   이요, 저 하늘에 뜬 구름은 내 방에 둘러텨 놓은 병풍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 아득히

   출렁거리는 푸른 바다는 무엇인가? 바로 내 방 한 쪽에 마련해 놓은 술독이라 한다.

- 도도한 취흥을 어떻게 풀어볼까? 말로 설명을 해본들 속이 풀릴리가 없을 것이다.

   깊게 탄식을 해보아도 여전히 가슴은 답담하게 막히어 뚫리지 않는다. 이 격정을 풀

   길은 하나뿐이구나. 자기도 모르게 손을 휘젓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는 것이다.

- 다른 곳에 갈 데도 없다. 내 방이 세상의 전부이니, 배방 안에서 춤판을 벌인다. 이

   춤은 맵시있게 추는 춤이 아니다. 신명이 나서 도취하여 구르고 뛰며 추는 춤이다.

- 취흥에 겨워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는데 무엇이 거치적가려 나의 신명풀이를 방해

   하고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준령이라는 곤륜산에 나의 긴

   소매자락이 자꾸만 걸린다고 불평이다. 이것은 아직도 우주가 바로 내 한 몸을 담고

   있는 방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말라고 재치있게 확인시켜주고 있는 말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