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봄 옛 절은 한적해 일이 없고 - 진각 혜심
春深古院寂無事 (춘심고원적무사) 깊은 봄 옛 절은 한적해 일이 없고
風定閑花落滿庭 (풍정한 화락만정) 바람 자는데 뜰에 가득 들꽃이 졌네.
堪愛暮天雲晴淡 (감애모천운청담) 맑은 저녁 하늘 옆ㅂ은 구름 사랑스러워
亂山時有子規啼 (란산시유자규제) 이 산 저 산 무시로 두견새 우네.
眞覺 惠諶 (1178~1234)
- 고려
작품해설
- 고요함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소란함과 마주하였을 때 그 소중한 가치가
제대로 살아나는 것 같다. 지칠 대로 지친 영혼을 쉬게 해주려면 고요함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항상 밖을 향해 치달리고 살다가, 고요함 속에 들어와 감각기관을
모두 닫고 쉬게 하면 또 하나의 새로운 눈이 떠져서 안으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래서 고요함이 소중한 줄을 알겠다.
- 혜심의이 시는 바로 그 고요함의 극치에서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고요함은 죽음의 정적이 아니라, 생명력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고요함
이요, 세상의 소리와 연결통로를 찾고 있는 고요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 첫째 구절에서는 때가 깊은 봄이요, 장소가 오래된 옛 절이며, 아무 일이 없이 한적함
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봄'은 결코 한적하고 아무 일이 없는 시간이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에서도 꽃이 피고 잎이 피며, 나비ㅘ 벌들이 날고 바쁘기 그지없는
계절이다.
- 그렇다면 '엣 절'의 고요함이 축이 되어, '봄'이 안심하고 바쁘게 돌아갈 수 있은 것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 둘째 구절은 절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봄바람이야 치맛자락이 날리도록 불어야
하는 것인데 고요히 잠들었고, 꽃은 나뭇가지 위에서 피어 있어야 하는데 절 마당에
가득 떨어져 있다. 움직임과 고요함, 열림과 닫힘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
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셋째구절에서 사람의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디에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아무 일이 없다'고 말할 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이며, '뜰에 가득 들꽃이
졌네'라고 할 때에 그 시선이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옛 절에서 '본성을 보고자'
고요히 참선에 들었던 사람이 '본성'은 말하지 않고 '감정'을 말하고 있다.
- '감정은 비록 잔잔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분명하게 물결치며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물결치며 움직이는 '감정'의 바탕에 움직이지 않는 '본성'이 축으로 버티고 있기에 이
'감정'은 결코 빗나가거나 도를 넘어서지 않을 줄을 알 것 같다.
- 넷째 구절에슨 움직임이 소리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사방의 산골짝에서 두견새가 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고요함은 끝나고 소리의 소란한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말인가?
- '옛 절'의 고요함은 이 '산'이 움직이지 ㅇ낳는 것보다 더 움직임이 없이 고요한 중심축
으로 버티고 있다. '옛절'의 고요함이 중심축이 되어 구심력으로 버티고 있다면 이제
감정의 물결이 저 하늘 위까지 퍼져나가고 사방의 산들에서 우짖는 '두견새'를 비롯
하여 이 세상 온갖 소리가 펴져나가면서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 그래야 이 소란함이 파탄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건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중심에서는 언제나 고요함이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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