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에 누워서 잠이나 잘까 - 태고 보우
十方無壁落 (심방무벽락) 온누리 툭 트여 막힌 데 없고
四面亦無門 (사면역무문) 사면에는 여닫는 문이 없네.
佛祖行不到 (불조행부도) 부처와 조사도 올 수 없는 곳
閑眠臥白雲 (한면와백운) 흰 구름에 누워서 잠이나 잘까.
太古 普憂 (1301~1382)
- 고려
작품해설
- 이 시에 대해 "깨달음의 세계를 깨달음 세계 안에서 보여 주는 이야기다"라 하고,
또 "한 생각 일어나면 그르치는 절대적인 無의 경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
이라 지적한 해석이 있다.(志安, 『바루 하나로 전가의 밥을 빌며』, 계창, 2008,
214-215쪽)
- 후세의 선사들은 깨달음의 문제를 먼저 인식의 관심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깨달음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깨달으면
무엇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이 없다. 그것은 올바르게
깨달음을 얻으면 그 실천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이라 할 수 있
을 것 같다. 깨달음의 본체를 인식하면 그 작용으로서 실천은 저절로 해결될 것
이라는 말이다. 본체를 안으로 삼고 작용을 바깥으로 삼는 본체중심의 사유로
나타난다.
- 여기서는 인식이 실쳔에 앞서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디로 갈 지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제대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니, 이른 바 '앎이 앞서고 행함은 뒤
에 온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앎은 행동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행동은 앎을 실현
해주는 것으로 서로 돌아보는 상호보완의 작용을 하고 있ㄷ고 한다.
- 깨달음의 세계를 그려내는 인식의 관심에서도 깨달음의 안에서 깨달음의 본질
을 설명하는지, 깨달음의 바깥에서 깨달음의 드러나는 양상을 설명하는 것인
지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 보우는 분명 깨달음의 안에서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그 깨달음
의 세계에서는 아무 데도 담벽으로 막힌 곳이 없는 게계라는 '무한성'을 증언
하였고, 다음으로 그속에서는 이길로 들어가고 저 길로 나가도록 정해진 문이
아무 데도 없다는 '무제약성'을 증언해주며, 또 그 다음으로는 부처니 조사니
하는 인격의 차등의식으로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무분별성'을 증언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범위와 구칙과 계층 등 모든 관념과 분별이 부정
되는 세계이니, 과연 '絶對無'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우는 이 깨달음의 결론으로 "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위에 누워 한가롭게
낮잠이나 자볼까"라고 말한다. 그는 분명 깨달음의 세계 안에서 충족을 얻었나
보다. 구름 위에 떠 있는 황홀감도 느낀 것 같다. "한가롭게 낮잠이나 자겠다'는
것은 '도'에 통달하면 아무 것도 인간의 조작적 행의를 할 필요가 없다는 '無爲'
의 세계를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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