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만 보네 - 대혜 종고
<示徒>
三月韶光沒處收 (삼월소광물처수) 춘삼월 봄볕 거두어 둘 데 없어
一時散在柳梢頭 (일시산재유초두) 한꺼번에 버들가지 위에 흩어버렸네.
可憐不見春風面 (가년불견춘풍면) 아깝게도 봅바람 얼굴 안 보이고
却看殘紅逐水流 (각간잔홍축수류) 물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만 보네.
大慧 宗杲 (1088~1163)
_ 宋
작품해설
- 간화선(看話禪)의 거장 대혜종고가 어느 봄날 제자들에게 이 시 한 편을 제시하였다.
분명 '선'의 오묘한 이치를 가장 함축적으로 제시하여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리라.
- 이 시에서 그가 중시하였던 '화두'를 찾는다면 첫째, 둘째 구절에서 '봄볕'과 셋째,
넷째 구절에서 '봄바람을 끄집어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
- 『列子』의 「楊朱」편에는 어느 농부가 봄날 밭을 갈면서 햇볕을 등에 쪼이니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집에 돌아와 자기 아내에게 "햇볕의 따뜻함을 등에 지고 가는 법은
남들이 모르고 있으니, 우리 임금님께 가져다 바치면 큰 상을 내리실 거야"라고 말했
다는 우화가 있다. 이것이 봄볕은 바친다는 '헌폭(獻曝)'의 이야기이다.
-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오래 간직할 길이 없다. 가장 먼저 신록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저 버들가지 위에서 다 흩어져 눈부시게 빛나도록 맡겨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어디 소중한 것이 어디 봄볕 뿐이랴?
- 대혜 종고는 '봄바람'을 보고 싶다면 봄바람을 보려들지 말고, 저 물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을 보라고 일깨워 준다.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이물위에 떨어져 물 따라
흘러가고 있으니, 바로 여기에 봄바람이 있는 것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 진리는 현실의 세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현실을 제거하고 진리를 찾으려 든다면
애초에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니 되지 않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이 현실 속에서 진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데, 어느 허공을
헤매며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이냐 라고 엄하게 문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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