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이 머리에 내리치겠지만 - 승조
四大元無主 (사대원무주) '사대'는 애초에 주인이 없고
五蘊本來空 (오온본래공) '오온'은 본래 빈 것이라네.
將頭臨白刃 (장두임백인) 칼날이 머리에 내려치겠지만
恰似斬春風 (흡사참춘풍) 봄바람 베는 것과 흡사하리라.
僧肇 (384~413)
- 東晉
-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수제자로 『肇論(조론)』을 지어 '空'사상을 존했다는 승조는
동진의 好佛군주인 요흥(姚興)이 벼슬을 내려주는데도 거부하다가 처형을 당해 30세
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작품해설
- 이 시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지은 '임종게(臨終偈)'이다. 한 사람의 수도승으로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사생관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 그 비장함도 소중하지만 그
생사를 꿰뚫어보는 사생관의 투철함에 깊이 경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금
할 수 없다.
- 불교의 '空'사상에 근거하여 존재론의 일반적 의미를 두 구절 10자로 집약시켜
주고 있다. 이 세계의 모든 형상있는 존재를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요소로서
흙, 물, 불, 바람의 '四大'는 끊임없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인간
존재를 포함한 개별적 사물을 형성하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대'의 구성요소가 어느 누구에 소유되어 있지 않으니 주인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다음으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루어 드러내고 작용하고 있는 기본요소로서
형색, 감각, 사유, 행위, 의식의 '五蘊(오온)'이 본래 공허한 것이요 실상이
없다고 한다.
- 이미 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으니, 내 몸뚱이도 내
것이라고 권리주장을 할 수도 없는 처지요, 나의 경험과 삶을 이루고 있는
'오온'이 모두 공허하여 실상이 없다하니 내 목슴을 가져간다 한들 다 허망한
꿈속이 이야기일 뿐이다.
- 그러니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에서는 이 몸뚱이에 붙은 머리에다 시퍼런 칼날이
떨어진다고 한들 내 것을 잃었다고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미 죽음과 삶을 초탈하였는데, 남들이야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겠지만 본인
으로는 숨을 내쉬거나 눈을 깜빡거리는 것처럼 그저 '무심'할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이렇게 다 버리고 비우고 나면 '허무'에 덜어지지 않겠는가? 아마 지신의 가슴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본래의 마음 곧 '本心' 혹은 '眞心'이 남아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대'를 놓아버리고 '오온'을 비워버리는 그 주체가 바로 '본심'이요 생사를 초탈
함으로써 확보하는 진실한 자아 곧 '眞我'가 본심 자체가 아닐까?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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