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비 온 뒤 물소리 산빛 선명하구나 - 화서 이항로

花雲(화운) 2018. 3. 2. 18:29


비 온 뒤 물소리 산빛 선명하구나 - 화서 이항로

<雨後臨溪偶吟>



靑山自古今 (청산자고금)   청산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요.

溪流無終極 (계류무종극)   계곡 물은 끝없이 흐르는구나.

誰識造化機 (수식조화기)   누가 조화의 조짐을 알리오.

雨後多聲色 (우후다성객)   비 온 뒤 물소리 산빛 선명하구나.


華西 李恒老 (1792~1868)

- 조선

- 19세기 후반 조선 말기의 도학을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독자적 성리설의

   이론체계를수립했던 성리학자요, 외세의 침략에 가장 강경하게 저항하였던 척사

   의리론의선봉장이었다. 

- 당시 서양세력이 이미 종교로 깊이 침투해 들어왔고, 이어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

   를 무력으로 침공해오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유교체제의 조선사회가 존립위기를

   맞게 된 현실에서 그는 유교이념을 '正道'로 수호할 것과 서양문물을 '邪術'로 배척

   할 것을 선언하였던 '衛正斥邪論'을 표방하여 한말 도학의 이념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작품해설

-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우리가 항상 보는 일상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청산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 서 있고 계곡 물도 예나 이제나 끝없이 흐르고 있는데, 도학자는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과 본체의 세계를 찾고 싶어 한다.

- 셋째 구절에서는 청산과 계곡 물의 배후에 이렇게 청한을 변함없이 있게 하고 이렇게

   계곡 물을 쉬지 않고 흐르게 하는 주재의 존재를 알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어떻든

   '조화옹' 혹은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누가 만나보고 싶지 않겠는가?

- 내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사실 뒤에는 이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내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 뒤에는 이 사물을 보이도록 생성하여 드러내는존재가 있다는 생각이다.

- 넷째 구절에서는 비온 뒤의 세찬 물소리를 듣고 선명한 산빛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조화'의 손길을 느끼는 감회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일상에 빠져 있으면 생각도 타성에 적어 별다를 자극을 받지 못하고 의식도 잠들어 각성

   되지 못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일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변화의 경험을 하게

   되면, 의식이 깨어나 생생한 각성을 회복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가 일상세계를

   넘어서 근원의 존재를 생각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경험적 세계의 평면 속에 사로잡혀 있다가, 전혀 새로운 차원인

   근원적 존재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부터, 바로 이 경험적 세계, 곧 일상적 세계의 의미가

   다시 읽혀진다는 뜻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