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니 묵가니 다툴 게 뭐 있는가 - 다산 정약용
<贈有一上人>
愴望起遐想 (창망기하상) 쓸쓸히 바라보니 아득한 생각 일어나네.
林澤多豪英 (임택다호영) 초야에는 영웅 호걸들 많기도 하구나.
物淨斯得天 (물정사득천) 대상이 맑아지면 하는 이치 얻는 법이라.
儒墨何須爭 (유묵하수쟁) 유가니 묵가니 다툴 게 뭐 있는가.
茶山 丁若鏞 (1762~1836)
- 조선
작품해설
- 정약용이 17세(1778)였을 때 화순 현감으로 있던 부친을 모시고 있었는데, 화순
출신으로 당대의 대표적 고승인 연담 유일(連潭 有一, 1720~1799)이 부친을 찾아왔다.
이때 부친의 지시에 따라 연담에게 드리는 시 두 편을 지었던 일이 있었다. 위의
시는 그 가운데 한 편인 「유일스님에게 드림」이라는 시의 후반부이다.
- 또 한 편의 시는 「지리산승가」인데, 이 시에서는 "서른 세 해를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니/ 세상 사람 어느 누가 그 얼굴 기억하리"하고 읊어 유일스님의 탈속 수도
생활에 감탄하고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 셋째, 넷째 구절은 바로 이 '다산실학'의 포용정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선언하는
것이다. 사물이라는 대상세계가 투명하게 맑아지면 역사와 전총과 관습의 대상세계
를 넘어서 '天理'곧 '天道'가 드러나는 것인데, 어찌하여 사유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
여서 유가와 묵가가 서로 비난하고 다투는 석이 무의미한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 유가니 묵가니 다툴게 없다면 유교와 불교 사이에도 누가 옳은지 그른지 대립적
시야를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정을 통해 대상을 공정하게 바람봄
으로써, 하늘 이치를 파악하는 길이기도 하다.
- 정약용은 유학자로서 기본적으로 불교를 비판하는 입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의 생애 속에서는 불교가 깊이 침투하고 있었던 자취를 확인
해 볼 수 있다. 정약용이 44세된(1805) 봄에 백련사로 놀러갔을 때, 백련사에 머물고
있었던 34세의 혜장이 정약용을 헌 번 만나보곤 스승처럼 따르며 교유하였다.
- 또한 이 시대의 대표적 선승으로 다도를 중흥시킨 선구자인 초의는 정약용을 스승
으로 모시고 시와 유교경전을 배웠다. 초의는 뒷날 김정희와도 깊은 친교를 맺었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
'花雲의 배움터 > 漢詩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인이 사람 노릇 하기 참 어려워라 - 매천 황현 (0) | 2018.03.02 |
---|---|
비 온 뒤 물소리 산빛 선명하구나 - 화서 이항로 (0) | 2018.03.02 |
세상에서 버려짐은 하늘이 풀어 주심이니 - 담헌 홍대용 (0) | 2018.03.01 |
슬프다 우리 '도'는 이제 끝나버렸나 - 성호 이익 (0) | 2018.03.01 |
은하수 끌어다 이 마음 씻어내고 싶네 - 백호 윤휴 (0) | 2018.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