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 부대사
空手把鋤頭 (공수파서두) 빈 손이면서 호미자루 잡았고
步行騎水牛 (보행기수우) 걸어가면서 물소를 탔네.
人從橋上過 (인종교상과) 사람이 다리 위로 지나가는데
橋流水不流 (교류수불류)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傅大士 (497~509)
- 梁
작품해설
- 현실적으노라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모순의 역설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역설의 첫 단계는 형식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을 드러낸다.
- 문제는 이 형식논리의 사유가 발판으로 삼고 있는 개념의 형식을 깨뜨리지 않으면
형식논리의 사유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형식논리 안에서 일치하면 맞고 일치하지
않으면 틀리는 것이니, 오직 일치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판단하고 있다.
- 그러나 세상은 이미 현실에서 모슨으로 가득 하 있다. 그러하면 형식논리에 맞추어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은 폭이 매우 좁은 한정된 것일 뿐이다.
- 이제 세상을 전체적으로 다시 보고 그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사유방법을 찾자면
우선 형식논리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러기에 역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빈 손이 비어 있다는 의식을 하기 위해서는 온갖 것을 붙잡고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부정해가야만 가능하다. '손이 비었다'는 말은 '손에 호미자루를 잡았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이를 부정하면서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었다'는 말은 '잡고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요, '잡고 있다'는 말을 띄워 올려놓고 이를 부정할 때에 비로소
성립한다. 그렇다면 '비었다'는 말은 언제나 '잡고 있다'는 말과 함깨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실의 논리는 형식논리에서 배제시켰던 세계를 끌어들이고 있으니
한정시켰던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 사실이다.
- 셋째 구절, 넷째 구절에서는 역설을 또다른 시각에서 제시해주고 있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평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평면적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역설이다.
- 시의 장면은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진행형의 상태이다. 냇물 위에 걸려
있는 다리를 보면서 다리가 흐른다고 말하면 그것은 착시현상일까?
- 그러나 부대사는 착시현상의 신기로움을 읊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연 세상에
무엇이 고정되어 있고 무엇이 흐르는 것인가? 머무름과 흐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묻고 있는 것이다.
- 고정된 사유에 갇히는 순간 진리의 활발한 생명은 질식되고 만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시각이다. 한 가지 기준으로 세계를 보는 고정된 사유틀이 깨어지면 무수한
시각의 변화가 가능하고 세상의 무엇이나 포용될 수 있는 정신의 세계가 열리는
것으로 본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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