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허상虛像 外/문 숙

花雲(화운) 2012. 12. 13. 17:02

 

허상虛像 /문 숙

 


까치 한 마리가 눈밭에서 눈을 쪼고 있다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무엇을 찾고 있다

 

하얀 쌀알 같은 모습에 이끌려 다닌다

 

허기 앞에 고개를 숙이느라 날갯짓을 잊고 있다

 

눈을 쪼던 부리에는 물기만 묻어난다

 

헛된 입질에도 마음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하는 짓이 저렇다

 

 

 

참나무

 


참나무 한 그루가

 

발 아래 제 살점을 수북이 내려놓고 있다

 

우듬지에 푸른 잎 몇 개만 살아서 팔랑거린다

 

커다란 몸통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어쩌다 몹쓸 인연이 스쳐가며 중심을 뚫었나보다

 

작은 구멍들 속으로 수많은 벌레들이 들락거리며 길을 낸다

 

제 한 몸 내어놓고 개미부처 진딧물부처 노린재부처...

 

다 불러 모아 한판 잔치를 벌이고 있다

 

저 참나무, 다음 생이 환하겠다

 


[시집 '기울어짐에 대하여' 애지, 2012]

'花雲의 배움터 > 詩와의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미자/ 메주스님  (0) 2012.12.24
돌에/ 함민복  (0) 2012.12.19
가을에 들다/ 소소  (0) 2012.11.15
갈대/ 여정  (0) 2012.11.01
그리운 계산/ 이승은  (0) 201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