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원의 축복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백 원짜리 하나 팔러 나왔습니다.”
도시의 어둠 속을 달리는 지하철 안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껌 한 상자를 무릎 위에 놓고
연신 죄송하다며 사주기를 간청한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객차 안에서
아무 소득 없이 다음 칸으로 이동하려는 그때
문이 닫히기 전 급히 들어온 한 젊은 남자
깊이 눌러 쓴 검은 모자, 낡은 추리닝 차림으로
선뜻 오백 원을 내밀고 껌 하나를 집는다
그러자 일제히 한 곳으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
껌을 집어가는 팔뚝 위에 그려진 문신을 응시하고 있다
거기에 은근한 자태로 서 있는 관음보살상
손끝을 향해 고요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데
할머니에게 베푼 선행으로 하여금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의 무정한 가슴에
소리 없이 훈훈한 온정의 바람을 불어주고 있다
201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