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4

생존법칙

花雲(화운) 2011. 10. 21. 06:10

생존법칙

 

 

가을이기엔 때 이른 늦여름

녹음이 사위어 들기도 전인데

뚝, 뚝 떨어지는 어린 열매들

아직 여물지도 못한 채

무더기로 떨어져간다

 

도토리 살 속에 알을 놓는 벌레

보일 듯 말 듯 작은 몸으로

싱싱하고 푸른 곳간에 구멍을 뚫어

깨알보다 작은 분신 하나 슬어놓고

그 가지 끊어 땅에 떨어뜨린다

 

한쪽에선 사정없이 잘려 나가고

한쪽에선 얼마나 살아남을지도 모르면서

끈기 있는 수고로 한 생을 바치는데

 

또 다른 생명 살리기 위해

힘써 길러낸 목숨

값없이 얻어가고 따지지 않고 내주면서

알게 모르게 순종하는 미덕을

숭고한 자연의 법칙이라 정의하고 있다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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