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즐거움을 읊어 성중에게 보이다-유희춘
至樂吟示成中(지락음시성중)
園花爛慢不須觀 (원화란만불수관)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絲竹铿鏘也等閑 (사죽갱장야등한) 음악 소리 쟁쟁 울려도 아무 관심 없네.
好酒姸姿無興味 (호주연자무흥미) 좋은 술과 예쁜 자태에도 흥미 없으니
眞腴惟在簡編間 (진유유재간편간) 참으로 맛있는 것은 책 속에 있다네.
작품해설
유달리 부부 생활의 진솔한 일상을 풍부하게 기록해 높은 이가 있으니 선조 대의
석학이자 문인인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다. 유희춘이 약 10년
동안 쓴 일기인 『眉巖日記』에는 부인 송덕봉(宋德峯)과의 재미있는 일상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 유희춘은 평생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던 유학자로 유명한데,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보낸 시 한 수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책에만 빠져 있나요?- 송덕봉
次韻. 『眉巖日記』
春風佳景古來觀 (춘풍가경고래관)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月下彈琴亦一閑 (월하탄금역일한)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한 가지 한가로움이지요.
酒又忘憂情浩浩 (주우망우정호호)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여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君何偏癖簡編間 (군하편벽간편간) 그대는 어찌하여 책에만 빠져 있나요?
책을 읽는 즐거움이야 물론 크겠지만, 아름다운 봄 경치에는 달빛 아래 거문고를 타고나
근심을 잊고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 더 어울리는 법이라며, 아내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에 대해서는 아내가 남편보다 한 수 위
였던가 보다.
한 번은 미암이 궁뤌에서 국직을 하다가 아내에게 술 한 동이를 보낸 적이 있다. 때는
부부가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집을 떠나 서울에서 살 때였는데 1569년 9월 1ㅣ일,
미암이 승지로 승문원에 입직한 지 엿새 째 되는 날이었다. 미암은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모주를 보내며 시도 한 수 적어 보냈다.
그대 찬 속을 데워 줄 수 있을 거요- 유희춘
『眉巖日記』
雪下風增冷 (설하풍증냉) 눈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우니
思君坐冷房 (사군좌냉방) 찬 방에 앉아 있을 그대가 생각나오.
此醪唯下品 (차료유하품) 이 술이 비록 하품이지만
亦足暖寒腸 (역족난한장) 그대 찬 속을 데워 줄 수 있을 거요.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군요- 송덕봉
『眉巖日記』
菊葉雖飛雪 (국엽수비설) 국화 꽃잎에 비록 눈발이 날리지만
銀臺有暖房 (은대유난방) 그곳 은대에는 따뜻한 방 있겠지요.
寒堂溫酒受 (한당온주수) 찬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으니
多謝感充腸 (다사감충장)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군요.
남편을 따라 객지인 서울에 올라와 뒷바라지 하는 아내가 쓸쓸히 빈 방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남편은 자신에게 내려 준 모주를 나누어 보냈다. 그러자 남편의 은근한
사랑이 담긴 모주를 받은 아내 역시 따뜻한 사랑의 답시를 적어 보냈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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