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이 술로 찬 속이나 데우구려- 유희춘, 송덕봉

花雲(화운) 2018. 8. 4. 14:00


지극한 즐거움을 읊어 성중에게 보이다-유희춘

至樂吟示成中(지락음시성중)



園花爛慢不須觀 (원화란만불수관)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絲竹铿鏘也等閑 (사죽갱장야등한)   음악 소리 쟁쟁 울려도 아무 관심 없네.

好酒姸姿無興味 (호주연자무흥미)   좋은 술과 예쁜 자태에도 흥미 없으니

眞腴惟在簡編間 (진유유재간편간)   참으로 맛있는 것은 책 속에 있다네.


작품해설

유달리 부부 생활의 진솔한 일상을 풍부하게 기록해 높은 이가 있으니 선조 대의

석학이자 문인인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다. 유희춘이 약 10년

동안 쓴 일기인 『眉巖日記』에는 부인 송덕봉(宋德峯)과의 재미있는 일상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 유희춘은 평생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던 유학자로 유명한데,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보낸 시 한 수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책에만 빠져 있나요?- 송덕봉

次韻. 『眉巖日記』


春風佳景古來觀 (춘풍가경고래관)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月下彈琴亦一閑 (월하탄금역일한)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한 가지 한가로움이지요.

酒又忘憂情浩浩 (주우망우정호호)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여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君何偏癖簡編間 (군하편벽간편간)   그대는 어찌하여 책에만 빠져 있나요?


책을 읽는 즐거움이야 물론 크겠지만, 아름다운 봄 경치에는 달빛 아래 거문고를 타고나

근심을 잊고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 더 어울리는 법이라며, 아내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에 대해서는 아내가 남편보다 한 수 위

였던가 보다.


한 번은 미암이 궁뤌에서 국직을 하다가 아내에게 술 한 동이를 보낸 적이 있다. 때는

부부가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집을 떠나 서울에서 살 때였는데 1569년 9월 1ㅣ일,

미암이 승지로 승문원에 입직한 지 엿새 째 되는 날이었다. 미암은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모주를 보내며 시도 한 수 적어 보냈다.



그대 찬 속을 데워 줄 수 있을 거요- 유희춘

 『眉巖日記』


雪下風增冷 (설하풍증냉)   눈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우니

思君坐冷房 (사군좌냉방)   찬 방에 앉아 있을 그대가 생각나오.

此醪唯下品 (차료유하품)   이 술이 비록 하품이지만

亦足暖寒腸 (역족난한장)   그대 찬 속을 데워 줄 수 있을 거요.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군요- 송덕봉

『眉巖日記』


菊葉雖飛雪 (국엽수비설)   국화 꽃잎에 비록 눈발이 날리지만

銀臺有暖房 (은대유난방)   그곳 은대에는 따뜻한 방 있겠지요.

寒堂溫酒受 (한당온주수)   찬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으니

多謝感充腸 (다사감충장)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군요.


남편을 따라 객지인 서울에 올라와 뒷바라지 하는 아내가 쓸쓸히 빈 방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남편은 자신에게 내려 준 모주를 나누어 보냈다. 그러자 남편의 은근한

사랑이 담긴 모주를 받은 아내 역시 따뜻한 사랑의 답시를 적어 보냈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