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영영 중이나 따라갔으면 - 우암 송시열

花雲(화운) 2018. 2. 28. 18:32


영영 중이나 따라갔으면 - 우암 송시열

<次栗谷韻, 示子孫>



云胡今日事 (운호금일사)   어찌하여 오늘의 일은

事事却生憎 (사사각생증)   일마다 문득 증오만 생기나.

願棄人間事 (원기인간사)   원컨대 인간사 버리고

長從粥飯僧 (장종죽반승)   영영 중이나 따라갔으면


尤庵 宋時烈 (1607~1689)

- 조선


작품해설

- 이 시는 송시열이 율곡의 시(「題墻菴僧軸」)에서 운자를따서 자신의 처지를 읊어

   자손에게 보여준 2수의 시 가운데 둘째 수이다. 여기서 율곡은 동인들에세 미움을

   받았을 뿐이지만 지금 그 자신은 온 세상이 다 원수로 여기는 현실을 돌아보고 있따.

   그는 윤휴를 배척한 일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 보고, 자신이 언행을 삼가지 못한

   점을 반성하면서 자신을 엄겨규ㅣ 다스려야 할 것이라 다짐하였다.

- 그는 서인의 영수로서 당쟁의 한 가운데서 살았으며, 그의 독단으로 서인의 내부

   분열이 일어나 노롲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노론의 영수로서 권력의 중심에 서서

   반대파를 비판하는데 가장 엄격했던 인물이다.

- 효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면서 청나라를 치겠다는 북벌론을 제시하였으며, 멸망한

   명나라를 정통으로 높이고 청나라를 오랑캐로 배척하는 숭명배청의 의리를 시대

   이념으로 정립하는데 선두에 서기도 했다.

- 예송에서 자신의 예설을 강경하게 내세워 한때는 반대당파인 남인을 철저히 숙청

   하였으나, 끝에 가서는 유배를 당하였다. 그의 영향력이 너무커서 83세의 노인이었

   는데도 사약을 내려 죽이지 않고서는 반대파도 마음을 높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가 죽은 뒤 백년이 지나서도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 18세기 말 정조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노론 세력을 달래기 위해 그를 받드는 대로사

   (大老寺)를 여주에 세웠으며, 그의 문집에 '우암'이라는 호가 아니라 '송자'(宋子)라

   극존칭을 붙여 『宋子大全』을 국개에서 간행하는 특별대접을 하기도 했다.

- 이 시의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자신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일마다 자신에 대한

   증오가 일어나고 있음을 돌아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를 미워하겠다는 의도가

   없는 데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사실에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 송시열은 주자학자로서 그 시대에 가장 엄격한 주자학의 정통주의자였다. 그래서

   주자의 견해와 한 글자라도 다른 해석을 한다면 유교를 어지럽히는 적으로 규정하여,

   추호도 용서하지 않는 단호함믈 보였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에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다 버리고 밥이나 축내고 사는 중이나

   따라가고 싶다는 넋두리를 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대 정통이념을 수호하던

   강경한 투사가 내면에서 겪던 인간적 번민을 훨씬 가까이서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한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