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성품이 감정됨을 묵묵히 체험하게나 - 율곡 이이

花雲(화운) 2018. 2. 12. 15:46


성품이 감정됨을 묵묵히 체험하게나 - 율곡 이이

<理氣詠>



水逐方圓器 (수축방원기)   물은 모나거나 둥근 그릇을 따라가고

空隨小大甁 (공수소대병)   공기는 작거나 큰 병을 따라가네.

二岐君莫惑 (이기군막혹)   그대여 두 갈래에 미혹되지 말고

默驗性爲情 (묵험성위정)   성품이 감정됨을 묵묵히 체험하게나.


栗谷 李珥 (1536~1584)

- 조선


작품해설

- 이 시는 율곡이 친우 성혼과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 관한 토론을 벌이다가 자신의

   이기론적 입장을 시로 읊어 성혼에게 제시한 「理氣詠」8구절 가운데 뒷부분 4구절

   이다.

- 성리학에서 '이기'개념에 관한 토론은 우주와 인간의 기본구조를 인식하는 근원적 문제

   이니, 그 입장에 따라 우주론과 인간관이 달라지는 중대한 쟁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에서는 논리적 분석으로 접근하는데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

   논리적  근거가 달라지면 아무리 논쟁을 거듭하더라도 평행선을 달리며 일치를

   찾기가 어렵다.

- 이 시의 앞머리 4구는 다음과 같다.


"원기는 어디서 비롯하는가  

 무형함은 유형한 것 속에 있다네

 근원을 찾으면 본래 합쳐져 있음을 알겠고  

 물줄기 거슬러 오르면 온갖 정밀함을 보겠네."


- 근원의 무형한 본체와 파생된 유형한 현상이 같은 물줄기 위에 있는 것이요, 서로 연결

   되어 있으니 갈라서 별개의 것으로 나누어 놓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시는 바로 이 4구절에 이어서 현상과 근원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일원분적 관점을

   좀더 구테적으로 읊고 있는 것이다.

-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에서는 물이나 공기가 그릇이나 병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사실을 비유로 들어 '이'와 '기' 내지 '본체'와 '현상'이 별도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 율곡의 그릇과 병의 비유는 원래 불교에서 쓰고 있는 비유이지만 유교에서도

   본체와 현상 내지 '이'와 '기'는 동일한 사유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 여기서 물이나 공기는 언제나 다양한 형태의 그릇 속에 들어 있듯이, '이'도 언제나

   '기'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를 떠나 '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은 바로 앞의 비유에 근거하여, 둘로 갈라 놓는 사유방법에

   미혹되어 빠져들지 말 것을 경계한다. 나아가 인간의 성품도 감정 속에 드러나는

   것이지 감정을 벗어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체득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점이 율곡의 성리학이 지닌 근본입장이다.

- 그렇다면 퇴계는 왜 '이'와 '기'를 일치시켜 혼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둘로 갈라

   보려는 입장을 밝혔으며 율곡은 왜 '이'와 '기'의 분별을 경계하고 일치시키기를

   강조하였던 것일까?

- '이'와 '기'를 갈라놓고 '성품'과 '감정'을 갈라놓은 퇴계의 입장은 '이'와 '성품'의

   순수하고 선한 근원적 상태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 이에 비해 율곡은 '이'와 '성품'이란 언제나 '기'와 '감정' 속에 드러난다는 현실을

   전제로 그 현실을 '이'와 '성품'이 주도하는 질서로 바꾸어 보겠다는 적극적 공격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