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서리 내린 풀섶 벌레는 절절히 울고 - 백거이

花雲(화운) 2018. 2. 6. 12:14


서리 내린 풀섶 벌레는 절절히 울고 - 백거이

<村夜>



霜草蒼蒼蟲切切 (상초창창충절절)   서리 내린 풀섶 벌레는 절절히 울고

村南村北行人絶 (촌남촌북행인절)   마을 남북 어디에도 행인이 끊어졌네.

獨出門前望野田 (독출문전망야전)   홀로 문밖에 나가 들판을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 (월명교맥화여설)   메밀꽃이 달빛 아래 눈 내린 듯 하구나.


白居易 (772~846)

- 당


작품해설 

-  백거이가 어느 시골의 가을밤 풍경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읊은 시이다.

- 첫째 구절에서는 '서리 내린 풀섶'과 '벌레'가 등장한다. 서리가 내렸다는 것으로 보면

   가을도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풀섶에 서리가 내려도 아직 풀은 푸른

   기운을 잃지 않고 푸르게 버티고 있으니 서리 맞은 풀잎의 푸르름은 그 해 풀잎의

   마지막 푸름일 것이다.  

- '풀벌레'는 가을이 되면 귀가 아프게 울어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절절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면 시인도 풀벌레처럼 울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고 모르겠다.

- '서리가 내린다'는 말만 들어도 계절이 깊은 가을임을 알겠다. '서리'가 내렸으니 아직

   푸른 풀들도 곧 무렇게 시들어버릴 것이고 붉게 물들었던 숲의 나무들도 단풍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으로 서 있을 것이다.

- 첫째 구절이 나를 둘러싼 자연세계의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둘째 구절은 나를

   둘러싼 이웃 인간세계의 배경을 보여준다.  

- 셋째 구절에서는 남들이 다 잠들고 나서도 잠 못 이르는 주인공이 홀로 등장한다. 깊은

   밤에도 잠 못 이루고 깨어있는 영혼, 이런 영혼의 인간은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 마지막 넷째 구절에서는 주인공, 곧 깊은 밤에 홀로 깨어있는 영혼이 바라보는 세계가

   열린다. 하늘에는 달이 환하게 떠 있고 산자락으로 아득히 펼텨진 밭에는 메밀꽃이 한창

   피었는데, 하얀 메밀꽃이 달빛을 받으니 너른 들판 가득 하얗게 눈이 내린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 이 그림이 보여주는 광경은 단순하지만 그 장면은 매우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밤에 눈 내린듯 하얗게 펼쳐진 메밀꽃밭의 광경의 의미를 생각해

   볼 일이다.

- 메밀꽃이 아무리 하얗게 피었다 하더라도 달이 밝게 비춰주지 않으면 어떻게 눈 내린듯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까? 달빞만으로도 아름답고 메밀꽃밭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이 둘이 어우려져 '달빛어린 메밀꽃밭'의 환상적 경관은 몇 배나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중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