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 맑으니 하얀 돌 드러나고 - 왕유
<山中>
溪淸白石出 (계청백석출) 냇물 맑으니 하얀 돌 드러나고
天寒紅葉希 (천한홍엽희) 날씨 차가우니 단풍은 드물구나.
山路元無雨 (신로원무우) 산길에는 비가 오지 않았건만
空翠濕人衣 (공취습인의) 비취빛 하늘이 옷깃을 적셔오네.
王維 (699~759)
- 당나라 시인
작품해설
- 왕유의 이 시는 어느 맑은 늦가을 날 산길을 가고 있는 풍경일 수도 있고, 산 속에서
밝은 햇살이 비치는 냇가에 잠시 쉬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광경일 수도 있다.
- 늦가을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가는 한 선비의 모습을 그림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해주고 있으니 이 아름다운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는 '도'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첫째 구절에서는 시선이 발 아래 계곡을 굽어본다. 냇물이 투명하게 많그니, 햇살을
받아 냇물 속에 하얀 돌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 우리의 마음이 가을 물처럼 맑아지면 그동안 어둠 속에서 더듬고 있던 세상의 온갖
이치도 환하게 떠오르지 않겠는가? 냇물이 맑다는 것은 조건이고, 하얀 돌이 드러
난다는 것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성과이다.
- 둘째 구절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냇물을 굽어보던 시선을 들어 냇물 너머 산을 건너다
보며 수평을 찾고 있다. 냇물 속에서 맑은 냇물과 하얀 돌이라는 시각적 대상으로
다가오면서 공간적 순수함이 경험되고 있다면, 차가운 바람의 촉감과 붉은 단풍잎이
거의 떨어져 없어졌다는 시각적 대상의 결핍이라는 조건 속에 시간의 흐름이 경험되고
있다고 하겠다.
- 첫째 구절에서 잔잔한 기쁨으로 차오르던 가슴에, 둘째 구절에 오면서 쓸쓸함이
엄습하고 있으니, 초로에 접어드는 인생은 수확이 끝난 빈 들판처럼 기쁨과 쓸쓸함이
착잡하게 겹쳐오는 시간인가 보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에서는 새로운 반전을 하고 있다. 시선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자신의 옷깃을 굽어보며 상하로 움직이고 있다. 머리 위로 구름한 접 없이
아득히 넓고 높은 파란 가을 하늘과 하얀 도포자락을 걸치고 서 있는 한 점의 작은
자기 자신이 마주하고 있다.
- 그런데 '하늘'과 '나'는 맞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파란 하늘빛이
하얀 도포자락으로 젖어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내가 하늘 속에 맡겨지는 것이요,
하늘이 나를 감싸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랴. 노년에 달관한 인생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소롯이 담아주고 있는 것이 아니랴.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중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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