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스승의 詩

부치지 못하는 편지 / 임 보

花雲(화운) 2012. 10. 7. 21:50


부치지 못하는 편/ 임 보

 


한 여인에게 편지를 쓰노니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편지를 쓰노니

우리들의 조국이면서도 갈 수 없는 지척의 땅

북녘의 살고 있는 한 여인에게 글을 보내노니

아무리 추운 엄동설한이라도

언젠가는 대지가 풀리는 따스한 봄이 온다고

 

어느 외국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남루의 한 여인 내 누이여

들판에서 풀 뿌리를 뽑고 있었던가

흙 묻은 손으로

젖 달라고 달려드는 영아를 밀쳐내는구나

모성도 삼켜버린 마의 기근이여

 

엄동보다 더 모진 혹한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구나

불쌍한 누이여

누가 너를 거친 들판에 그렇게 내팽개쳤는가

비단옷자락 날리며

얼굴에 연지도 바르고

젊음의 풍만한 가슴도 자랑하고 싶을 그 나이에

이 무슨 악령의 형벌이란 말인가

 

고운 볼은 다 망가지고

뼈만 남은 앙상한 손마다

젖 무덤도 시든 밤 쭉정이처럼

쭈그러들고 말았구나

 

편지를 쓰노니

북녘의 내 불쌍한 누이에게 편지를 쓰노니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노니

저승까지도 사무칠 영혼의 언어로

봄이 멀지 않다고 편지를 쓰노니

신이여, 제발 이들을 버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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