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하는 편지/ 임 보
한 여인에게 편지를 쓰노니
밤 깊도록 잠들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편지를 쓰노니
우리들의 조국이면서도 갈 수 없는 지척의 땅
북녘의 살고 있는 한 여인에게 글을 보내노니
아무리 추운 엄동설한이라도
언젠가는 대지가 풀리는 따스한 봄이 온다고
어느 외국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남루의 한 여인 –내 누이여
들판에서 풀 뿌리를 뽑고 있었던가
흙 묻은 손으로
젖 달라고 달려드는 영아를 밀쳐내는구나
모성도 삼켜버린 마의 기근이여
엄동보다 더 모진 혹한이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구나
불쌍한 누이여
누가 너를 거친 들판에 그렇게 내팽개쳤는가
비단옷자락 날리며
얼굴에 연지도 바르고
젊음의 풍만한 가슴도 자랑하고 싶을 그 나이에
이 무슨 악령의 형벌이란 말인가
고운 볼은 다 망가지고
뼈만 남은 앙상한 손마다
젖 무덤도 시든 밤 쭉정이처럼
쭈그러들고 말았구나
편지를 쓰노니
북녘의 내 불쌍한 누이에게 편지를 쓰노니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노니
저승까지도 사무칠 영혼의 언어로
봄이 멀지 않다고 편지를 쓰노니
신이여, 제발 이들을 버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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