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회의 / 임 보
낮과 함께 동물들의 발자취가 사라지면
밤과 더불어 식물들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동물들은 빛의 힘으로 세상을 보지만
식물들은 바람의 전령으로 말을 주고 받으므로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잘 압니다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들이
참나무 숲에서는 참나무들이
대나무 숲에서는 대나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회의들을 합니다
사람들이 밀고 오는 불도저를 놓고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진 댐을 놓고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논에서는 벼들이
밭에서는 옥수수며 콩이며 고추며 곡식들이
과수원에서는 사과며 배며 복숭아며 과일나무들이
일 년 농사 지어봤자 다 헛일이라고
불평불만들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산자락 풀밭에서는 오만 가지 잡초들이 모여
제 이름들을 놓고 투덜댑니다
왜 나는 쥐오줌풀이지?
왜 나는 애기똥풀이야? 개불알은 또 어떻고!
며느리밑씻개도 있는 걸!
못된 사람들 가만두면 안되겠다고
그들은 연판장을 돌리기로 작정합니다
그리하여 바람의 전령들은 밤새 분주합니다
나무들의 산동네에서 들녘의 논밭단지로
과수원 마을을 거쳐 경사진 잡초 밭으로……
그런데 동이 트고 빛이 세상을 다시 점령하자
그들이 밤새 했던 모의가 부질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젠장! 그들의 말, 그들의 생각을
사람들의 귀에 담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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